反유대주의 금기 깬 美청년들 반전시위… 美대선 태풍의 눈으로
美공화, 시위대에 “反유대주의” 공격
하원서 관련 법안까지 통과시켜… 청년들 “대량학살 반대 하는것”
바이든 양측 사이 옴짝달싹 못해… 시위 장기화땐 ‘대선 악재’ 우려
美경찰, UCLA 진입해 시위대 강제 해산 나서 2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 경찰이 진입해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강제 해산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1일 양일간 친이스라엘 시위대가 이곳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캠프에 난입해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등 학내 치안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
바이든 대통령은 유대인을 혐오하는 반유대주의에 대해선 비판하면서도 반전 시위 등 사태 전반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층을 옹호하려니 대선을 앞두고 부(富)와 영향력을 지닌 유대계 유권자와 척을 져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를 노려 친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강경 진압론을 내세우며 바이든 대통령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지도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 “반유대주의” vs “표현의 자유 억압”
야당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 하원은 1일(현지 시간) 반전 시위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 맞서 ‘반유대주의 인식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부정하거나 이스라엘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반유대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집권 민주당이 과반을 점한 상원에서도 이 법안이 통과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당국은 시위대를 반유대주의 행위로 처벌하고, 시위를 방치하는 대학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전통 지지층인 청년층과 유대계 표심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상원에서 이 법안이 채택될지는 불투명하며, 백악관의 입장도 아직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반유대주의를 규탄한다”는 원론적 발언을 한 뒤 10일간 침묵하고 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이 1일 “대통령이 (시위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받고 있다”고 밝힌 것이 고작이다.
시위대는 이런 그를 ‘제노사이드 조(Genocide Joe·대량학살자 조)’라고 비판한다. 미 조지워싱턴대에서 시위에 참가 중인 미리엄 림 씨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대량학살과 이를 지원하는 ‘제노사이드 조’를 비판하는 것이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7일 홀로코스트 기념관 주최 행사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연설이 시위대의 분노를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미국에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1일 시위대를 ‘성난 미치광이(raging lunatics)’라고 지칭하며 “모든 대학 총장들은 즉시 농성장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 ‘1968년 사태 재연될까’ 우려
바이든 대통령이 옴짝달싹 못 하며 시위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크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집권 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해 대선 패배를 부른 1968년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반전 시위대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때 거센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휴버트 험프리 대선 후보의 지명 수락 연설 직전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이 장면이 생중계되며 험프리 후보의 지지율이 추락했고, 결국 대선에서도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에게 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청년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하더라도 1968년의 재앙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는 8월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린다.
그렇다고 시위 열기를 꺼뜨리기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서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바이든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든다.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백악관이 정답이 없는 기말고사에 직면했다”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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