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족돌봄청년, 국가와 사회가 무거운 짐 덜어줘야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라 한다. 어린 나이에 생계와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삶은 고달프고 피폐하다. 장애, 질병, 고령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생계를 책임지는 청년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등 미래를 설계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영 케어러 문제는 2021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혼자 간병하다 극심한 생활고에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회 이슈화됐다. 이 청년은 편의점 폐기물로 끼니를 때웠고,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결국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후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됐다. 청년은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했지만 국가의 공적 지원은 닿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의 영 케어러 통계나 현황 자료가 전무했다. 이런 상황이니 청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이뤄졌을리 없다. ‘간병 살인’의 책임이 이 청년에게만 있는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영 케어러는 대략 10만명으로 추정된다. 공부하고 일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청년들이 주변 도움 없이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니 안타깝고 씁쓸하다.
경기도에선 현재 영 케어러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가족돌봄 청소년 및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든 경기도는 올해 2월에야 실태조사 연구용역 계약을 했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렇다 할 지원책이 없다. 민간 사회복지단체의 산발적인 일부 지원이 있을 뿐이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부양의무를 떠맡아 생계 유지에 나서고 있는 영 케어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돌봄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해선 안 된다. 젊은이들에겐 그 시기에 누려야 할 희망의 삶이 있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이른 나이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정부와 지자체가 덜어줘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영 케어러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비관에 휩싸여 살거나, 무거운 경제적 책임으로 어려운 상황에 홀로 갇혀 살게 해선 안 된다. 국가와 지자체, 이웃이 책임을 분담하고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부모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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