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차라리 지방자치제를 폐지하라
美日의 지방자치 성공 이유는 원래 각 지방, 별도 국가였기 때문… 반면 우리는 왕건 이래 중앙집권
저성장 고령화 국가적 난국… 지금 필요한 건 담대한 혁신이다
외신 칼럼을 읽다 보면 종종 접하게 되는 표현이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요술 막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이다. 현실에서 달성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 상상의 힘을 빌려서라도 공유하고픈 의제를 강조하기 위한 화법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평화누리특별자치도’ 때문이다. 지난 1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발표한 ‘경기북도’의 새로운 이름 공모 결과다. 그 웃지 못할 희극을 보며 필자의 소망은 염원으로 바뀌었다. 내게 요술 막대가 있다면 지방자치제를 폐지할 것이다.
곧장 돌아올 반론.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의 초석 아닌가? 미국, 독일, 일본 등 민주주의 선진국을 봐도 모두 지방자치제를 충실히 지키고 있는 나라 아닌가? 이는 1987년 직선제 개헌 당시 지방자치제를 추진한 표면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듯, 지방자치 선진국은 근대 국가 건설 이전부터 각 지방이 별개의 나라(state, 国)를 이루고 살던 문화적, 역사적, 지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지역민이 스스로의 일을 알아서 처리하되, 중앙정부가 필요한 사안에서 연방을 이루는 ‘상향식 지방자치’가 탄생한 이유다.
반면 우리는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금껏 천 년의 역사 동안 중앙집권 체제로 살아왔다. 일제의 식민 통치 및 해방과 분단을 겪은 후에도 중앙집권 체제는 고스란히 유지됐다. 그러한 역사적 맥락 위에서 우리는 각 지역에 맞는 산업을 국가가 특정해 육성하는 수출 주도 경제 체제를 갖추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선진국의 지방자치와 달리 우리의 지방자치는 ‘국가 주도형 지방자치’, ‘하향식 지방자치’라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일본이나 미국의 지방자치와는 전혀 다른 단어다. 각 지역이 스스로의 일을 자신의 예산 내에서 알아서 처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앙의 예산을 타내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인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철마다 예타 평가를 무시하는 온갖 의제와 특별법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공항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대신 고추를 말리고 있는 이유, 직선으로 달리며 진짜 ‘거점’에만 서야 할 KTX가 오송분기점에서 굳이 한 번 꺾고 내려가는 등등의 이유다.
지방자치제는 대한민국을 ‘원 팀’이 아니도록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소위 ‘잘사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내가 내는 세금을 저 ‘못사는 동네’에 쓴다며 못마땅하게 여긴다. 반대로 ‘못사는 동네’ 사람들은 너희가 혜택을 독식해서 ‘잘사는 동네’가 된 것 아니냐며 고까워한다. 불필요하게 큰 시청, 도청, 구청을 지어가며 예산을 펑펑 낭비하는 건 그러한 심리의 반영이다. 서로 밥그릇을 힐끔거리며 남 주기 아까우니 내가 다 먹어치워야겠다는 놀부 심보로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다른 나라가 어찌 됐건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그런 제도다. 이제는 그 누구도 국가적 차원의 어젠다를 떠올리거나 추진할 수 없다. 홉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자체의 지자체에 대한 투쟁’만 남았다. 게다가 그러한 ‘국가 실종’은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시피 지방 소멸을 막고 인구를 분산하여 출산율을 회복하려면 서울·수도권과 별도의 메가시티 광역권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별 산업 플랜, 중소도시의 통폐합, 인프라의 재구축을 해도 이룰까 말까 한, 제2의 건국에 버금가는 사업이다. 지방세 수입과 지출을 둘러싼 갈등이 ‘경기북도’ 분도로 치닫고, 그 위에 특정 연령대의 정치 세력이 북한을 향한 기괴한 집착을 담아 ‘평화누리특별자치도’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이려 드는 이 나라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방자치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랜 군사정권 시기를 마무리 짓고 민주화의 첫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여론의 상향식 창구 역할을 어느 정도 해냈다. 하지만 이제는 온 국민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지자체, 기초의회 의원 선거 따위가 아니다. 저성장 고령화의 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신중하고 대담한 국가적 플랜이 절실하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요술 막대를 흔들어 지방자치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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