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과 통화 모두 자동 녹음…공무원 이름도 비공개로 전환
민원인 A씨는 울산 북구청에 “논문 작성을 위해 필요하니 빈칸을 채워달라”는 내용의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사실상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또 다른 민원인 B씨는 강원 춘천시에 시장의 업무추진비, 10년간 인허가 관련 서류 등 57개 항목, 9건의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춘천시는 이 자료를 정리하느라 별도의 직원을 배치해 3개월간 자료를 정리했으나 B씨는 찾아가지 않았다. 공무원들에게 ‘역적 같은 놈’ ‘꽃뱀 같은 년’ 등 욕설을 쓰며 정보 공개 청구를 한 민원인은 같은 민원을 1583개 기관에 접수했다.
정부가 이런 악성 민원을 막고,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범정부 종합대책’을 2일 발표했다. 지난 3월 경기 김포시 공무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공무원노조도 참여했다.
공무원이 민원인의 폭언·폭행을 신고한 건수는 2022년 한 해 동안 4만1559건에 달했다. 하루 160건(근무일 기준)이 넘는 폭언·폭행 사례가 접수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종합대책에서는 먼저 민원인이 욕설을 하거나 이유 없이 장시간 통화를 하면 공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명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내부 지침뿐이어서 공무원들이 시달려도 쉽게 끊지를 못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폭언을 하면 1차 경고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민원인과의 통화 내용을 전부 자동 녹음하도록 할 계획이다.
국민신문고 등 온라인 민원 창구에 대량 민원을 넣어 업무에 지장을 주면 일정 기간 민원 신청을 제한하기로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매크로를 돌리듯 민원 신청 내용을 ‘복붙(복사해서 붙여 넣기)’ 해서 계속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일일이 확인해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가 마비된다”고 했다.
현행 민원처리법에는 3차례 이상 같은 내용의 민원을 반복 접수할 경우 내용 검토 없이 ‘종결’할 수 있는데, 이를 악용해 문구만 일부 바꿔 민원을 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제한 기준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민원별로 정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 공무원의 이름과 전화번호, 업무 등도 비공개로 바꾸고, 악성 민원인에 대해선 공무원 개인이 아닌, 해당 기관 차원에서 수사 기관에 고발 조치할 계획이다.
부당하거나 과다한 정보 공개 청구를 막는 대책도 내놨다. 2022년 기준으로 정보 공개 청구는 총 180만건이었는데, 이 중 58만건(32%)을 10명이 청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행안부는 앞으로 똑같은 청구서를 반복해서 내면 해당 기관에서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바로 ‘종결’ 처리할 수 있게 정보공개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칫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게 정당한 민원과 악성 민원을 잘 가려서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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