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서 ‘여성 인권’ 주장하면 테러범?…20대 여성에 징역 11년

최혜린 기자 2024. 5. 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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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올린 게시물 문제 삼아
“허위”라며 테러방지법 적용
빈살만 ‘인권 개선’ 공언 무색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온라인상에서 여성인권 보장을 요구해온 여성에게 테러방지법을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고 있다. 각종 개혁 정책으로 ‘여성인권 불모지’라는 오명을 씻겠다고 공언해온 사우디의 두 얼굴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현지시간) 가디언은 마나헬 알 오타이비(29·사진)라는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게시물을 올린 혐의로 지난 1월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오타이비는 사우디에서 피트니스 강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SNS에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글을 자주 올려 인권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 여성이 결혼할 때 남성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남성 후견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오타이비는 여성들이 온몸을 가리는 전통의상 ‘아바야’ 외에 다양한 옷을 선택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체가 드러나는 운동복 등을 입는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사우디 당국은 2022년 11월 오타이비를 체포했다. 이후 법원은 오타이비에게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1년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그의 행위가 ‘허위 또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웹사이트 등을 이용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테러방지법 위반이라고 봤다. 이 같은 사실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오타이비가 체포된 이후 약 5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된 채 고문을 당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러나 사우디 당국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사우디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는 오타이비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여성인권 수준을 높이겠다던 당국의 입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앰네스티 사우디지부는 “이번 판결은 사우디가 최근 몇년간 떠들썩하게 강조해온 여성인권 개혁의 공허함을 폭로했고, 당국이 평화롭게 활동하는 반대 세력을 침묵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16년 ‘비전 2030’ 보고서를 발표하며 여성인권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왔다. 이후 여성의 운전과 여행을 허용하는 등 일부 진전도 있었지만, 남성 후견인 제도가 존속되는 등 유의미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아 ‘말뿐인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시민들이 SNS에서 여성인권을 지지하거나 자국 사업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일이 잇따르면서 당국이 비판 목소리를 탄압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졌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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