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붕괴에 대처하는 시민의 자세

이재훈 기자 2024. 5.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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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시민보다 소비자를 더 자주 마주한다.

기후붕괴 시대를 대하는 시민과 소비자의 개념은 이보다 더 적극적이다.

'환경운동가의 기업'인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가 가득한 세계 경제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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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2024년 4월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파타고니아코리아 사옥에 세계 최초로 열린 ‘파타고니아스쿨’ 1기 참여자들이 활짝 웃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오늘날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시민보다 소비자를 더 자주 마주한다. 시민은 주체적 의사결정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지닌 공화정의 구성원이다. 시민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고 평등하다. 반면 소비자는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시장에 유통되는 물건과 서비스 등을 누리는 이를 말한다. 소비자는 지불 능력이 있어야 존중받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소비자는 지불 능력에 따라 차등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시민은 자신과 관련한 사회문제와 마주할 경우 사회의 주인이 되어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반면 소비자는 사회문제가 생기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손익이 발생하는지 따지기에 급급할 뿐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전쟁의 가혹한 참상이야 어떠하든 국제지역학 뉴스와 전문가 분석을 바탕으로 관련 기업의 주식투자 수익 분석에 애면글면하는 일부 경제 유튜브 채널 구독자들이 소비자의 대표적 사례다.

기후붕괴 시대를 대하는 시민과 소비자의 개념은 이보다 더 적극적이다. ‘환경운동가의 기업’인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가 가득한 세계 경제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저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서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버리는 일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세계 경제가 지구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써버리고 파괴하는 소비자다. 우리는 필요는 없지만 원하는 물건을 계속해서 사들인다”고 썼다. 같은 책 서문에서 환경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소비자의 대안으로 ‘윤리적 구매자’ 되기에서 멈추지 말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개발하는 일”을 찾자고 제언한다.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시민이 되자는 것이다.

이번호 <한겨레21>은 이런 시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딸 박서율(10) 활동가, 남편 박범석(44)씨와 강원도 삼척으로 달려가 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정덕(45)씨, 고등학생이던 2019년 기후파업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화석연료와 함께 이어져온 삼척의 역사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김서연(25)씨가 그런 시민들이다.(이번호 ‘포커스’) 기후붕괴 관련 규제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한국 기업과 달리 ‘지구가 목적이고 사업은 수단’이라는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에 매료돼 자비로 세계 최초의 파타고니아스쿨을 만든 설립자들과 이 철학을 배워 국내 기업에 전하는 ‘사내 혁신 바이러스’가 되겠다는 8명의 스쿨 1기 참여자도 그런 시민들이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의류산업의 생산-유통-폐기 과정을 줄이기 위해 새 옷 구매를 멈추고 옷 교환행사에 참여한 이들(이번호 ‘표지이야기’)도 그런 시민들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인 채경선씨의 강의를 듣고 ‘동시대의 보편적 운명’을 인지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고통과 슬픔으로 각성시킨 지영(이번호 ‘이야기 사회학’)도 그런 시민이다.

기후붕괴에 대처하는 시민으로서의 연대는 인간이 “시간과 공간의 모든 차이점을 넘어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는 확신”(수전 니먼)을 심어준다. 잇따른 전쟁 참사와 지구 붕괴를 눈앞에 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이런 보편주의일지도 모른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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