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업 자율에 맡긴 `반쪽짜리 밸류업`
인수합병·R&D 투자 계획 공시
불이행 시 제재 수단 마련 안해
기업 공시 감시 강화 방안 필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지원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지침이 나왔다. 기업은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현재 구체적인 재무지표와 함께 향후 성장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투자정보 등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기업가치제고'에 초점을 맞춰 시장의 오해가 있는 부분을 기업이 직접 해명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기업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제시한 비전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마련하지 않았다. 또 기업가치제고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기업이 쪼개기 상장 등 지배구조 관련 부정적 이슈는 빼고 긍정적인 면만 내세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을 위한 밸류업 지침을 발표했다.
핵심지표로는 재무제표 중에서는 PBR,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수익률, 주주환원율 등을 제시했다. 비재무지표로는 지배구조와 사회적책임 등을 담았다. 이후 재무지표나 비재무지표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익성, 성장성, 지배구조 개선 계획 등을 제시하도록 했다. 신규 투자나 인수합병, 주주환원 확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금융당국은 이번 기업가치 제고 계획 지침을 이달 중 완성하고 준비된 기업부터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이번 지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토대로 기업과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 각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업 참여 유도를 위해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기업이 제시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시의 목적이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것인 만큼 기업은 긍정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계획을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이 제시한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이를 실제로 이행하지 않더라도 기업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기업의 공시 여부나 내용에 대한 진정성은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정성이 있는 계획이 공시가 되고 시장 평가가 우수해 해당 기업에 투자가 이뤄진다면 우리 기업도 한번 믿어달라라고 하는 기업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자본시장법 등은 '악의'를 가지고 허위사실을 공시하거나 이를 이용해 불공정거래를 유도할 경우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실제 계획을 부풀려 공시한 뒤 일부만 이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미래 계획에 대한 공시가 거시경제 상황 변경 등에 따라 이행이 어려워질 경우 면책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기업이 공시를 통해 '모자회사 중복상장'(쪼개기 상장)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 '터널링'(지배주주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 등에 대해 투자자에게 적극 해명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시 내용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오히려 기업에 불리한 내용은 제외하고,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는 요소만 선택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정부는 기업이 밸류업 계획을 제시할 경우 세제혜택이나 밸류업지수 편입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시했지만, 기업의 미래계획 공시에 대한 감시기능 강화 등의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 시장에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오해에 대한 해명을 내놓을 수 있지만, 허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미흡하다"며 "기업이 '악의'를 가지고 속여야만 처벌이 가능한데, 고의와 과실을 어떻게 나눌지, 기업이 공시한 내용을 어떤 기준으로 이행 여부를 파악할 것인지 등 감시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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