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환자들 숨 꼴딱 넘어갈라… 남은 의사들 숨가쁘게 뛴다

김재근 선임기자,최다인 기자 2024. 5. 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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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70일… 대학병원 상황
'주 1회 휴진'에 불안 고조
충남대병원, 정상진료 강조
의료계-정부 신뢰도 깨져
'의대 증원' 갈등 해결 요원
"모두 잘못하고 있어"비판
의료진 번아웃·환자들 고통
2일 오전 충남대병원을 찾은 시민이 충남대의과대학, 충남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가 본관 1층에 붙인 호소문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제대로 진료를 못 받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치료도 받고 처방도 받았습니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 70여 일이 지난 2일, 대전지역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역 의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충남대병원에는 여전히 환자들이 많았다. 본관 1층 접수창구에는 내원한 환자들로 붐볐고, 각 진료 과마다 외래환자들이 대여섯명 혹은 10여 명씩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 환자들 "담당교수 진료 계속 천만다행"

충남대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일부 환자들은 '매주 금요일 휴진'을 크게 걱정했다.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휴진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느냐는 것이다. 비대위 측은 "70일 넘게 전공의들 없이 병원을 지켜온 탓으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간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이모 씨(50)는 "평소 간 수치가 안 좋고, 악화될 위험도 있어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매번 외래 예약이 안될까 걱정하고 있다"며 "담당교수가 계속 진료를 해주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밝혔다.

병원 측은 "금요일 휴진은 공식 입장 아니다"며 정상 진료를 강조하고 있다.

조강희 충남대병원장은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중증, 응급, 심혈관, 암환자에 대한 진료는 중단할 수 없다"며 "상당수 교수들도 이점은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 충남대병원에서는 전공의 168명이 병원을 떠났다. 전공의들의 이탈로 초진, 약품 처방, 환자 기록 관리 등에서 업무 공백이 발생했다. 단체 행동 한달 만에 외래, 입원 환자는 30%, 수술은 50%까지 줄어들었다.

□ 교수들 업무 급증, 신체적 정신적 한계 도달

충남대병원은 응급, 중증, 심혈관, 암환자에 대한 진료체계를 차질 없이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충남대병원은 현장에 남은 의료진을 최대한 가동하면서 공백 메우기에 부심하고 있다. 400명의 전문의(교수)가 전공의가 맡아오던 환자의 초진을 소화하고, 응급실 환자 호출에도 직접 달려가 진료를 하고 있다.

이처럼 업무가 급증하자 지난달 26일 교수들이 참여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매주 금요일 휴진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선우 비대위원장은 "응급실 환자를 받고, 초진을 하는 등 업무가 늘어나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주 52시간이 넘는 교수진이 80%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본관 복도에는 교수들이 흰 가운을 펄럭이며,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몰려드는 외래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장 환자인 최모(70) 씨는 "의사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졌다"며 "의사들을 믿고 계속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측은 교수진의 피로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인력이 절대 부족해 교수들이 1인 3역, 4역을 하고 있다"며 "과별로 적정한 시간에 휴진을 하도록 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상체제도 한계 다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사들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 계속되는 극한갈등 의료현장 피폐화

의료현장에서 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의정 갈등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기본적인 신뢰 관계조차 무너진 상황이다. 정부는 계속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부터"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여러 가지 해법이 제시됐지만 금방 뾰족한 해결책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별위원회를 근간으로 의정 갈등을 수습하려 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전공의와 의대생, 교수 등이 참여하는 범의료계협의체 구성을 예고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가진 영수회담에서 국회에 공론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해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법원이 의대 증원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변수다. 서울고등법원이 의대생 및 의대 교수들이 제기한 의대 증원 처분 집행정지 항고심과 관련 정부에 5월 중순까지 의대 정원 최종 승인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어찌 됐건 의료현장에 장기간 비상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런 일이다. 교수들만으로 전공의가 떠난 의료현장을 지키는 것은 버거운 일이고 가능하지도 않다. 여기저기서 의료공백이 빚어지고 교수들은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의사는 근무시간이 1주일에 100시간도 넘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체력이 소진되고 스트레스가 누적돼 정상적인 진료와 수술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근무강도가 높아지면서 교수들과 병원측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교수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병원측은 지역 의료계의 최후 보루인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책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피해는 환자 몫… 국민들 "의-정 모두 잘못"

의료 공백으로 가장 고통을 겪는 것은 환자들이다. 실제로 적절한 진료와 치료 시기를 놓쳐 고통을 겪고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공히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내세우고 있지만 극한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이 고통과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과로와 싸우며 현장을 지키는 교수들이나 불안한 진료 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환자들 모두 피해자가 아닐 수 없다. 의정갈등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시선도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나?"는 의문에서 이제는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바뀌고 있다.

2일 충남대병원에서 만난 외래환자 김모씨(35)는 "의료 공백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정원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나 의료현장을 떠나 싸움을 계속하는 의사들이나, 누구 하나 잘한 게 없다"고 말했다.

"3단계 비상경영체제 가동… 환자들 포기 안 해"

조강희 충남대학교병원장

정부 차원 지원 강조

"전공의가 없어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증환자나 심뇌혈관, 암환자를 진료하는데 공백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조강희 충남대학교 병원장은 경증환자들은 가능하면 집 근처의 의원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입원해달라고 강조했다.

"1차와 2차 의료기관의 환자가 늘었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3차 의료기관 편중 현상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조 원장은 이번 사태로 의료인력 배출의 공백 현상이 빚어지는 것도 경계했다. 올해 인턴이 없으면 내년에는 전공의 1년차가 없게 되고, 전문의가 1년간 배출되지 않으면 개원의도 줄고 종합병원 교수자원도 확보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부족한 분야의 의사를 수시로 뽑고 있습니다. 군의관과 공보의 15명을 배정받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조 원장은 진료가 줄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는 것도 큰 걱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국립대병원들이 희망퇴직을 받고 무급 휴가를 실시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충남대병원도 올해 수익이 20-30% 가량 줄 것에 대비해 3단계 비상경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국립대병원들마다 큰 적자가 예상됩니다. 의료 현장을 제대로 지키면 지킬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입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꼭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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