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천지` 선관위…채용 불법·편법 넘어 증거인멸

한기호 2024. 5. 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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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자료 제외해도 비리 만연
복사본 제출 등 비협조적 태도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의 채용 비리가 도를 넘었다. 불법과 편법, 특혜,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에 증거인멸까지 망라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리 소굴'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용 비리 핵심인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선관위가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상당수 들여다보지 못한 사실상 '반쪽 조사'였는데도 이 정도였다.

제대로 조사가 이뤄졌다면 비리가 더 추가 됐을 개연성이 있다. 그 이면에는 뿌리깊은 특권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체 수준으로 개혁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 채용 비리 백태= 감사원 감사 결과 선관위의 채용 비리가 만연했다. 채용 비리에는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등의 고위직뿐 아니라 국장, 상임위원, 과장 등 중간 간부까지 다양했다. 검찰 수사 요청에 더해 참고 자료까지 송부한 것까지 포함하면 연루자는 49명에 달했다고 한다.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채용공고를 게재해 내부 관계자들에게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합격기준을 바꿔 합격자를 탈락시킨 일도 있었다. 면접위원을 내부 위원으로만 구성해 외부위원을 절반 이상 위촉해야 하는 규정도 위반했다.

직원들은 내부 메신저에서 사무총장 아들을 '세자'로 칭했다. 이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경쟁채용(경채)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

중앙·인천 선관위는 경력경쟁채용(경채·지방 공무원을 국가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전형)을 하면서 선발 인원 산정부터 채용 방식, 서류 전형 우대 요건과 시험 위원 구성 등 모든 과정에서 A씨의 아들에 유리한 방식을 적용했다. 이 당시 A씨는 선관위 사무차장·사무총장으로 재직했다.

중앙선관위는 2019년 9월 경력채용 수요 조사에서 인천 선관위가 6급 이하 인원이 정원 초과라고 제출했으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신규 경채 인원 1명을 배정했다. 인천 선관위는 규정과 달리 3명의 면접위원을 모두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A씨와 친분이 있는 내부 직원으로 했다. 이 중 2명이 A씨 아들에 만점을 줬고, A씨 아들은 2명 선발 중 2순위로 결국 합격했다.

서울선관위는 2021년 10월 전(前)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상임위원 B씨의 자녀가 응시한 경채 면접에서 내부 위원들이 면접 점수를 사후 수정했다. 전남선관위는 2022년 2월 경채 면접에서 면접위원들의 평정표 작성조차 없이 전 사무총장 C씨의 자녀를 합격시켰다.

충북선관위는 2019년 11월 전 청주시상당구선관위 국장 D씨의 자녀가 경채에 응시하자 자녀가 소속된 지자체가 자녀의 전출에 동의하도록 관할 선관위가 선출직인 군수를 여러 차례 압박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선관위가 자체 진행한 1623회의 경력채용 가운데 104회(6.4%)에서 국가공무원법과 선관위 자체 인사규정이 정한 공정채용 절차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혜성 채용과 합격자 부당 결정 등 부정의혹 합격자는 경력채용 공무원 총 384명 중 무려 58명(15%)에 달했다.

◇ 증거 인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간부 자녀의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사실상 조직적으로 방해한 정황이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들은 "충격적이다. 이런 기관은 처음"이라고 혀를 찰 정도였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해 7월 경력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 때 감사장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보통 피감기관들은 현장 감사에 나온 감사관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과 컴퓨터, 집기 등을 제공한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를 제외한 8개 시도지사 선관위에서는 공간만 내주고 감사가 끝날 때까지 컴퓨터와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았다.

감사를 나간 50여명은 개인 컴퓨터를 가져갔고, 일부 선관위에 항의한 끝에 프린터 한 대만 겨우 받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부터 자료 조사에 들어갔지만 실제 자료를 받은 건 7월 말부터였다.

그마저도 채용 비리에 연루된 전·현직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검은색 펜으로 지운 복사본을 제출하거나 컴퓨터 포렌식 협의에만 2~3주를 끄는 등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파일은 변조하거나 문서를 파쇄하면서 증거 인멸도 시도했다. 일부 고위인사는 깡통 폰과 컴퓨터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가 자료를 은폐한 2022년 감사에서도 선관위 직원 128명이 청탁금지법을 어기고 금품을 받고, 선거관리위원들이 법령에 근거도 없이 매달 수당 200만원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가족 특혜 채용이 계속되자 선관위 인사담당자들이 "가족회사, 지긋지긋하다"라는 자조 섞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감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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