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기름값 오르자 극우 득세…기후정책 선진국의 정치위기

박병수 기자 2024. 5. 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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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책 선도지역인 유럽에서 적극적인 탄소배출 감축 정책들이 유권자들을 극우세력 지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세이지 저널에 실린 '에너지 전환과 우익 지지:네덜란드 사례' 보고서를 인용해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은 네덜란드 가정에서 극우정당 지지율이 5~6% 늘어났다고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애초 이민 및 세계화 반대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에너지 비용을 늘리는 기후정책에 대한 반대도 정강 정책에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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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베트남 남부 동나이주의 한 저수지에서 잘못된 개축공사와 며칠째 이어진 뜨거운 날씨 탓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빼곡히 떠올라있다. 동나이/AFP 연합뉴스

기후정책 선도지역인 유럽에서 적극적인 탄소배출 감축 정책들이 유권자들을 극우세력 지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세이지 저널에 실린 ‘에너지 전환과 우익 지지:네덜란드 사례’ 보고서를 인용해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은 네덜란드 가정에서 극우정당 지지율이 5~6% 늘어났다고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네덜란드는 10여년 전부터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천연가스에 매긴 세금을 올리고, 그 돈으로 태양광 설치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이 정책은 대체로 잘 작동해, 네덜란드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가정은 2013년 2%에서 20%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이런 탄소배출 감축 드라이브는 정치적으로 역풍을 불렀다. 천연가스값이 거의 50% 오르며, 이에 따라 난방비 상승을 겪은 가정에서 극우정치가들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런 반작용은 유럽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집에 효율 높은 열펌프의 설치를 요구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세를 얻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농민들이 최근 유럽연합(EU)의 환경규제에 반발해 트랙터를 몰고 파리로 몰려들었고,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는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 승용차의 도심 출입을 규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극우정당의 득세는 그들이 기후 행동에 맞서는 쪽으로 정치적 입지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애초 이민 및 세계화 반대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에너지 비용을 늘리는 기후정책에 대한 반대도 정강 정책에 포괄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네덜란드의 극우 자유당은 재생에너지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21년에 나온 정강 정책은 “에너지는 기초 필수품이지만 광포한 기후정책이 에너지를 값비싼 사치품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적인 논조를 동원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미국 조지타운대의 에릭 뵈텐 교수는 “기후 정책이 극우 연합정치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치적 환경은 유럽이 추진한 탄소배출 감소 정책의 현주소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전체적으로 전력의 60%를 재생에너지나 핵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의 탄소배출 감축 대상은 전력 이외의 다른 대상, 예컨대 교통, 건설, 농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전력생산을 재생에너지로 바꿀 때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기후 정책의 대상이 평소 몰고 다니는 차량, 집안의 난방 등으로 바뀌며 개인의 일상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불편을 호소하며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연구기관 ‘프로젝트 템포’의 전략책임자 루크 쇼어는 “전환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불가피하게 사람들의 일상이 영향을 받는 섹터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라며 “좀 더 개인적인 문제가 되니까 사람들이 더 정치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정부나 기업이 아닌 자신들이 짊어진다고 느끼며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알렉산더 가즈마라리언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석탄 공동체가 석탄 산업 사양화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공화당 지지가 5% 늘어났다. 이런 현상에는 기후변화 부정론과 화석연료 관련 잘못된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많은 유권자가 자신이 처한 재정 상황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측면도 있다. 가즈마라리언은 “그들이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경제적 상황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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