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의대 증원 ‘과잉 관여’는 월권[포럼]

2024. 5. 2. 11:3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와 의대생 등이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처분 등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담당하고 있는 항고심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심문에서 "5월 중순까지 결정할 테니, 그 전에 최종 승인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한 것은, 의사 수요는 늘어나고 있으나 공급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종훈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前 홍익대 법대 교수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와 의대생 등이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처분 등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담당하고 있는 항고심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심문에서 “5월 중순까지 결정할 테니, 그 전에 최종 승인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증원의 근거를 따져보기 위해서 정부 측에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출하고, 증원에 대비해서 인적자원과 물적 시설을 제대로 조사하고 증원분을 배정한 것인지 등 증원과 관련된 현장실사 자료와 회의록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러한 조치가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이례적인 결정이다. 그러면서 항고심 재판부는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행정행위는 사법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삼권분립 원리와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행정부의 모든 작용’이 사법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행정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주로 국민의 구체적 권리에 관한 법적 분쟁에 대해서 허용된다. 행정부의 행위 중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수반되는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적 통제가 적절하지 않다. 행정부의 자유재량이 인정되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법적 통제가 부정되고 있다. 다분히 정책적이고 전문·기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사법부의 개입을 자제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삼권분립 원리의 또 다른 측면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한 것은, 의사 수요는 늘어나고 있으나 공급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동결돼 있는데, 응급실·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고, 지방 의료 서비스의 인프라도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기반해 의료 수요를 전망한 결과, 2050년에는 2만 명 정도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란 분석에 기초해서 증원 결정이 이뤄졌다. 그리고 주요 외국과 비교해도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정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의대 정원이 지금도 많지만, 고령화 등으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고 있다.

다시 말해, 행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은 단지 특정인 몇몇 사람의 이익이나 불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다. 관계 전문기관과 전문가의 의견 및 외국의 예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전반에 대한 장기적인 예측에 기초해서 결정한 행정부 차원의 정치적·정책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선거를 통해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이것이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리의 내용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렇게 복잡하고 중대한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사법부는 그 결정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따지는 건 별론으로 하고, 사법부가 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임종훈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前 홍익대 법대 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