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떠난 자리, 꽃 구경하러 갈까…소쇄원·독락당·삼가헌도 갈 만!

박미향 기자 2024. 5. 2. 10: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미향의 미향취향 정원 여행
에버랜드 제공
에버랜드 ‘하늘정원길’을 여행하는 관람객.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숲과 정원이 정답일까.

지난달 1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는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83)씨가 조성한 여의도샛강공원, 선유도공원,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 등 국내 이름난 정원들의 4계절 풍광을 담았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와 풀, 환하게 핀 꽃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마다 관람객들은 도시의 삶에 지친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경험을 한다. 숲의 힘이다.

정영선씨가 꾸민 정원에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호암미술관에 있는 ‘희원’이 있다. 그가 4년을 공들인 걸작으로 꼽힌다. 소박한 한국적인 정원의 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꽃과 나무의 화려한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 ‘희원’에서 만나는 신라시대 석탑과 불상, 장승, 석등을 살피는 일도 재미지만, ‘희원’ 여행의 백미는 정원에 자리한 나무와 풀, 꽃들과의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조우다. 해가 지고 뜰 때마다, 봄이 오고 여름이 떠날 때마다 달라지는 나무와 꽃, 풀이 건네는 인사말에서 세상살이 진리를 발견한다.

에버랜드는 푸바오가 떠난 빈자리를 ‘희원’을 포함한 5가지 테마정원 여행으로 채우려고 한다. ‘숲캉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숲 여행자가 늘고 있기 때문. 산림청 자료를 보면 국내 성인의 78%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숲길 체험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도시인의 불안감과 우울을 낮추는 데도 숲 여행만 한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호암미술관에 있는 ‘희원’. 에버랜드 제공
‘하늘정원길’ 여행객들. 박미향 기자
‘하늘정원길’ 여행객들. 박미향 기자
5가지 테마정원 중에 2019년께 문 연 ‘하늘정원길’은 수도권 최초 매화 테마정원이다. 에버랜드는 1976년 개장 초기부터 ‘포시즌스가든’, ‘장미원’을 비롯해 ‘뮤직가든’(2016), ‘포레스트캠프’(2019) 등을 조성해왔다.

지난 16일 ‘하늘정원길’에서 만난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장은 “과거엔 꽃과 나무가 그저 자신을 예쁘게 드러내는 사진의 배경이었다면 이젠 주인공으로 등극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과 꽃이 잘 어우러지는 소통 공간이 늘고 있다”며 “살아있는 식물이 자라는 정원은 공간을 만든 이와 찾아와 여행하는 이 모두 성장하게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5일부터 보름간 ‘하늘정원길’을 다년간 이만도 1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구불구불 에스(S)자로 난 1㎞ 정도의 ‘하늘정원길’은 붉고 하얗고 노란 꽃밭 순으로 안내한다. 3만㎡ 규모의 정원에는 만첩홍매, 율곡매 등 13개 품종 약 700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나무에 매달린 꽃잎은 당당하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종국엔 꽃잎에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신의 섭리에 순응해 피고 지는 꽃의 생애가 진리임을 깨닫는다.

‘하늘정원길’에 핀 튤립. 박미향 기자
‘하늘정원길’ 여행객들. 박미향 기자
에버랜드 ‘장미원’. 에버랜드 제공
매화만 이 길에 핀 것은 아니다. 나무 아래 겸손하게 핀 튤립이나 수선화도 발견한다. 대략 2주간 활짝 피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매화 대신 이 길 여행객을 맞을 꽃들이다. ‘하늘정원길’엔 작은 연못과 대나무 숲도 있다. 기념사진 찍기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1996년 리뉴얼한 1만㎡ 규모의 ‘포시즌스가든’은 계절별 대표 식물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튤립축제가 한창이다. 100여종 약 120만송이가 피어있다. 헬로키티, 마이멜로디 등 인기 산리오캐릭터와 함께 꾸며진 데도 있다. 다음달 17일부터 장미축제가 열리는 ‘장미원’은 1996년, 2018년 두 차례 한 리뉴얼로 현재 720개 품종 약 300만송이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국내 꽃 축제 출발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202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장미정원 대회 ‘월드 로즈 컨벤션’에서 ‘우수 정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에버랜드가 지난 10년간 개발한 신품종 24가지도 구경할 수 있다. ‘뮤직가든’은 음악을 들으면서 식물을 살필 수 있는 정원 여행지다. 지름 60m의 원형 모양의 땅에 100여종의 식물이 식재돼있다. 160살 된 느티나무도 이곳에 산다. 트레킹, 요가, 명상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포레스트캠프’는 9만㎡ 규모의 자연생태 체험장이다. 편백나무와 통유리를 활용해 만든 ‘포레스트 돔’이 지난해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바람이나 물·새소리를 들으며 하는 명상 체험이 화제다. 놀이기구 이용권을 구매하지 않고도 정원을 관람할 수 있다. 정원 관람용 티켓을 따로 판매한다.

경주 독락당 풍경. 경주시청 제공
아름다운 경주 독락당의 가을. 경주시청 제공
여행할 만한 ‘한국 정원’에는 ‘희원’ 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음완보’(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선조들은 여유로운 정원 산책을 즐겼다. 우리네 정원이 서양처럼 미로 같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이유다.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 우리 정원이다. 서울 창덕궁,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 경주 독락당, 달성 삼가헌,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원, 강릉 오죽헌 등 숨겨진 보물 같은 정원이 전국에 퍼져있다.

한국 대표 정원으로 꼽히는 소쇄원. 한국관광공사 제공
달성 삼가헌. 연꽃 정원으로 유명하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의 건축 규칙을 따르지 않고 주변 자연환경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오경아씨는 ‘정원의 기억’에서 창덕궁 후원을 두고 ‘물의 정원’이라며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후원 전체를 막힘없이 잘 흐르게 했고, 낮은 곳에 이르면 대형 연못과 그 옆에 건축적으로 빼어난 정자를 만들어 물과 함께 주위를 감상하도록 했다”고 칭찬한다.

한국 대표 정원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담양 소쇄원도 북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소쇄원을 중앙을 통과하는 구조다. 넋을 잃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소쇄원, 보길도 부용원과 함께 한국 3대 정원으로 불리는 서석지는 경북 중요민속자료 제108호다. 조선시대 학자 정영방이 조성한 정자와 연못이다. 독락당은 조선시대 학자 이언적이 낙향해 7년간 거주한 곳이다. 독락당에 앉아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광을 관람하는 맛은 식물 여행의 으뜸이다.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지은 고택으로, 별당인 하엽정이 아름다운 연꽃 정원으로 유명하다. 한국 대표 정원가로 꼽히는 윤선도의 손길이 닿은 보길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거주했던 오죽헌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한국 정원 여행지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