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평화를 연주한 ‘첼로의 성자’[이 남자의 클래식]
13세때 헌책방서 악보 발견
25세때 공개 연주뒤 알려져
노동자를 위한 연주회 열어
말년에 ‘유엔 평화상’ 받기도
1889년 어느 날, 13세의 카살스(1876∼1973)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오래된 헌책방에 들렀다. 그곳에서 먼지 구덩이 속에 쌓여 있던 악보 한 뭉치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그것을 구입해 품에 안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훗날 카살스는 이 순간을 “마치 신비스러운 마술을 대하는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회상했다.
그날부터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이 악보를 연구하고 또 연습했다. 하지만 당대의 비르투오소 첼리스트였던 그임에도 이 경외심으로 가득한 작품을 남들 앞에서 연주할 용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연습을 거듭한 끝에 그가 25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첫 공개 연주를 하게 된다. 그 후 또 35년이나 지난 60세가 돼서야 첫 리코딩을 마친다.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작품이 바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그때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분적으로만 악보가 발견됐고 그나마 사람들은 이 작품을 테크닉 연습을 위한 연습곡 정도로 여겼을 뿐, 높은 예술성을 지닌 독주곡으로서의 작품성은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살스의 발견과 연주, 리코딩을 통해 비로소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첼로 독주곡으로 인정받으며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작품은 ‘첼로의 구약성경’으로 불리며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해야 하고,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과 같은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카살스를 ‘첼로의 성자’로 칭송하는 까닭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집을 발견한 이도, 또 경이로운 연주를 통해 세상에 알린 이도 카살스이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입니다. 따라서 나의 첫 번째 책무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입니다.”
‘첼로의 성자’ 카살스는 위대한 음악가임과 동시에 시대를 대표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모든 노동자와 가난한 자가 음악을 향유하며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 그는 사재를 털어 1920년 그의 고향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에서 ‘카살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노동자들을 위해 1달러만 내면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값싼 연주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1928년 바르셀로나 올림피아 극장에서 열린 첫 번째 연주회에는 턱시도가 아닌 소박한 차림의 약 2000명의 노동자가 모여들었다. 스스로를 ‘육체 노동자’라고 표현했던 카살스는 이날 음악회를 그 어느 연주회보다 보람을 느꼈던 순간으로 꼽는다. 1936년 7월 17일,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독일 히틀러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내전을 일으킨다.
카살스는 프랑코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회를 통해 스페인의 평화를 위해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당시 프랑코의 부하 중 한 명은 라디오에서 “카살스, 당신을 잡기만 하면 다시는 첼로를 연주할 수 없도록 팔꿈치 아래 두 팔을 모두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정권의 핍박을 받던 카살스는 1939년에 결국 프랑스로 이주했고 연주 활동을 뒤로한 채 스페인의 난민들을 구제하는 활동에 전념했다. 1971년 유엔의 날, 카살스는 내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프랑코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유엔 평화상’을 받았다. 유엔은 카살스에게 “당신은 평생을 진실과 아름다움과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역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 와 함께 독주 악기를 위해 작곡된 모든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곡은 첼로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기교와 넓은 감정적 표현, 선율의 흐름과 방식 등 모든 면에 있어 뛰어난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오랜 시간의 연구 끝에 카살스가 제시한 음악의 전형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해석에 기초를 놓은 모범적인 해석으로 존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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