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산후후유증, 세상이 끝난것 같을때 다시 시작했어요" [인생은 아름다워①]

김주리 2024. 5. 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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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트레이너 '다솔맘' 최보영의 인생 스토리
"함께 극복해봐요" 육아맘들에 선한 영향력
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때때로, 삶은 잔인하다.

행운이라 여겼던 일이 모습을 바꿔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때, 삶의 이면이 어둠 속에서 매서운 이빨을 드러낼 때,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감당할 수 없는 불운과 불행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고통을 맞아야 할까.

심연같던 산후 후유증, 몸도 마음도 아팠다

홈트레이너 '다솔맘' 최보영씨가 출산 이후 운동을 시작하기 전의 모습(왼쪽)과 최근의 모습. /사진=다솔맘 제공

'다솔맘' 최보영 씨의 삶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임신했지만 원인 모를 지독한 소양증으로 인한 전신 질병으로 가장 축복받아야 할 시기, 뜬 눈으로 통증과 싸워가며 길고 긴 밤을 고통 속에 견뎌야만 했다.

“온 몸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웠어요. 진물이 나고 피가 날 정도로 긁어야 하는 정도였는데 임신 상태이다 보니 어떤 약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간지럼증을 완화하기 위해 얼음을 몸에 문지르기까지 했는데, 임산부는 또 몸이 따뜻해야 하잖아요. 몸을 데우면 땀이 나고, 그러면 또 가려움이 심해지고,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무사히 출산을 마쳤지만, 이후에는 지독한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저주 받은 듯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또 시작이구나. 이 징글맞은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모든 것이 밉고, 또 모든 것이 싫었다.

“제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는 느낌이었어요. 남편도 싫고, 시댁도 싫고, 친정조차도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냥 제가 다 피해자인 것 같았어요. 극한의 우울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니, 그러면 안되지만, 나쁜 생각까지 할 정도. 일단 몸이 안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렇다보니 사랑하는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더 우울해지고, 악순환인 거죠."

견딜 수 없는 우울에 최보영 씨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상담을 하고, 항우울제로 보이는 약도 처방받아 복용했다. 이대로라면 사랑하는 아이와의 매순간을 고통스럽게 지나쳐야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약을 먹었을 때 오히려 컨디션이 나빠졌어요. 몸이 축 쳐지고 기력이 빠지고 졸리고. 몇 번 먹지 않았지만 이 약들이 내 몸에 안 좋은 작용을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감정을 잠시 잠재울 뿐, 결과적으로는 내 몸에 이롭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가 떠오르는 듯 최보영 씨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때 울고 있는 다솔이를 봤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저 아이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저 아이는 무슨 죄지? 내가 다솔이를 보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기적처럼 들었어요. 이대로는 안 돼. 달라져야겠다. 그리고 약을 모두 버렸습니다."
육아와 함께 시작한 '틈새운동', 80만 인플루언서로 도약하다

/사진=다솔맘 제공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하고 스포츠 심리학 석사를 받은 최 씨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트레이너 생활을 시작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집중했다는 최 씨.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신체를 돌보지 못한 걸 깨닫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건강해질까를 가르치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제 몸은 병들어가고 있었어요. 아이를 낳고 산후풍이 심해 병원을 찾으니 뼈 나이가 70대라고 하더라고요. 근력을 키우지 않으면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트레이너 생활을 해왔는데, 근력을 키워야한다니… 그래서 그 날 이후, 수강생들에게 알려주던 것들을 차근차근 제 몸에 대입시켜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내 신체를 아껴주고 챙겨주기 시작한 거에요."

이후 최 씨는 육아와 병행하며, 자신을 위해 '틈새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하체의 근력을 기르는 동작, 아이를 안은 채로 간단한 스쿼트 동작들을 하면서 몸을 다져나갔다. 다솔이가 잠에 들었을 때는 플랭크를 하며 몸을 키웠다. 육아라는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최 씨가 '홈트 여신'으로 떠오른 시작점이다.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육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어요. 아이를 키우는 많은 이용자들이 남긴 게시글을 보고, 또 DM(개인 메세지)를 보내 물어보기도 하면서 시작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까 운동하는 모습이 노출이 된 거에요. 저에게 육아 조언을 주시던 분들이 반대로 운동에 대해 물어보시고, 저는 또 답변을 드리고. 그렇게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까지 올리게 됐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곧 기적…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홈트 인스타그램 '다솔맘'의 촬영 장소인 서울시 강남구 자택에서 최보영씨를 만났다. 최씨는 "아무 일도 없는 하루는 축복이자 선물"이라며 고난을 극복했던 인생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나갔다. /사진=손다영 에디터

인스타그램 80만 구독자를 보유한 최보영 씨의 '기적'이 하루 만에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홈트(홈 트레이닝)를 시작한 건 다솔이가 두세 살이 된 후에서의 일이다.

"한 순간의 각성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기독교를 따르는 저의 경우, 정말 많은 기도의 시간이 있었고, 그 와중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인 거에요. 육아 외 제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고, 틈새운동을 하면서 몸이 점점 좋아지고, 그러기 위해 이른 시간에 잠들기 시작하니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신체가 좋아지니 사람들에게 많이 웃고 상냥하게 대하게 되니까, 그러면서 또 주변인들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더라구요. 모든 것이 천천히 차근차근 선순환을 이룬 거예요."

자신을 돌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 전부가 의미있는 변화를 꿈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 모두 시도와 도전을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한 번의 실패는 경험이 되고 실패의 경험은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최 씨는 이러한 이들에게 변화의 핵심은 '조바심 없는 꾸준함'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살을 빼야겠어, 그러니 운동을 해야지'라고 마음 먹은 사람은 목표 체중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돼있어요. 그러다보면 하루 운동량을 30분이다 1시간이다 정하게 되고, 그 만큼을 채우지 못하면 스스로 자책하며 목표를 향한 걸음이 힘을 잃게 돼요. 좋지 않은 흐름입니다. 단 5분, 아니 1분이라도 좋아요. 내가 설정한 목표를 위한 행동을 하루에 1분이라도 실행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절대 효과가 없는 게 아니에요. 핵심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거에요"

자신을 부정적으로 압박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최 씨는 설명한다. 스스로 도달하고 싶은 골(Goal)을 설정해 나아가는 것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강박을 갖는 고통의 시간이 아닌, 더 나은 날들과 삶을 위해 정진하는 축복과도 같은 선물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나 자신이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가꾸고 지키는 거에요. 정성을 들여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나를 돌아보는 거죠. 종교가 있는 분들이라면 기도와 감사함의 순간을 가져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최 씨에 따르면, 무료하고 아무 일 없는 하루는 오히려 축복이다. 갖은 슬픈 일과 고통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생각하면, 괴로움 없는 하루는 평화이며 지속되는 평화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프고 괴로웠던 나날들의 기억을 가진 다솔맘 최보영 씨.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그에게 물었다.

"인생은 아름다운가요?"

"그럼요, 너무나 아름답죠."
#다솔맘 #최보영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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