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예술가의 적(敵)인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인간 창조성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복제하고 확장하고 있다. 인간 전유물로 여겨지던 창작 능력이 AI에 의해 모방되거나 심지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AI 능력이 기존에 사무용 문서를 작성하는 수준에서 예술 창작으로 확장되는 게 최근 변화다. 소설과 시 같은 문학 작품은 물론 음악, 영상, 웹툰 등 다양한 매체 창작에서도 AI 아티스트의 활약상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사진 공모전이나 작곡 대회에서 AI 창작물이 수상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다. 이런 현상은 인류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AI 창작물이 예술 본질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는 점이다.
AI 창작물 저작권은 누구에게?
저작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AI 창작물이 예술 자체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AI 등장과 발전이라는 기술적 요인이 자칫 예술 창작의 미학적 요소, 작품에 담기는 인간만의 감성을 간과할 수 있다는 우려다. AI가 만든 콘텐츠에는 인간이 창작한 것과 같은 서사(敍事·narrative)가 없다. 예술가가 어떤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했고, 감상하는 사람은 이로부터 어떤 시대적 성찰을 느낄 수 있는지 시사점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과 달리 AI가 만드는 콘텐츠는 희소성이 없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전력(電力)만 제대로 공급되면 AI는 동시에 수천, 수만 개 '작품'을 쏟아낼 수 있다.
이미 예술계에선 AI의 모방과 인간의 창작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벌어진 사건은 흥미롭다. 독일 사진작가 보리스 엘다크센은 '위기억(僞記憶): 전기기술자'라는 제목의 흑백 사진으로 이 대회 크리에이티브 부문을 수상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엘다크센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자신의 사진이 실은 AI로 만든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엘다크센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AI와 예술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엘다크센은 "(자신이 제출한 작품이) 명망 있는 국제사진대회에서 우승한 최초 AI 창작물이 됐다.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줘 고맙다"면서도 "AI 이미지는 이런 대회에서 경쟁해선 안 되고 사진예술이 될 수도 없다"며 수상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대회를 주최한 세계사진협회(WPO)는 "크리에이티브 부문에선 이미지 제작과 관련해 다양한 실험적 접근을 환영한다"며 엘다크센의 작품이 AI를 활용했어도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엘다크센이 거부 의사를 밝힘으로써 그의 작품은 최종적으로 수상 명단에서 제외됐다.
AI 정밀성과 인간 독창성의 만남
일각에선 AI가 인간 창의성을 압도해 예술가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AI가 인간 예술가에게 유용한 창작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필자의 생각은 후자에 가깝다.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 파트너로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창작 과정을 효율화할 것이다. AI 도움 덕에 인간 예술가가 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AI 도움을 받더라도 예술의 본질은 창작자만의 감성과 개성일 테다. AI의 기술적 정밀성과 예술가의 인간적 독창성이 절묘하게 결합된다면 AI 시대에 예술은 오히려 더 번성할 수 있다.김지현 테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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