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법③]지방의원 마치 부하 다루듯…국회의 무관심

박대로 기자 2024. 5. 2.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 지방의원들 하수인 삼고 견제
지자체는 조직권과 예산권 무기 삼아 압박
행자부·기재부, 교부세로 지방 재정 좌우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지난 2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3회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에서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297인, 재석 260인, 찬성 257인, 반대 0인, 기권 3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4.02.29.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서울시의회를 비롯한 광역 의회들이 지방의회법 제정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이 요구는 그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입법 주체인 국회, 그리고 직접적인 견제 대상인 광역자치단체, 나아가 중앙 정부까지 모두 광역 의회와 기초 의회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 탓이다.

전국 17개 시·도의회 의장 협의체인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하며 수년째 공동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지방의회 조직·예산권 부재, 광역·기초의회 보좌관 부족 등 지방자치를 저해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지방의회법의 취지다.

지방의회법 제정안은 이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여러 건 발의돼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를 눈여겨보지 않고 있다. 오는 5월로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이 법안들은 폐기된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의회와 지방의원들이 세를 불리는 것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시·도 광역의원들과 구·시·군 기초의원들을 부하 다루듯 해왔다. 이번 4·10 국회의원 총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시·도 광역의원들과 구·시·군 기초의원들은 자기 선거가 아닌데도 선거 기간 내내 소속 정당 국회의원의 당선을 위해 지역구를 누볐다.

지방의원들이 선거에 동원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선거구 지역(당협)위원장 자리를 겸임하면서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를 성심성의껏 돕지 않아, 소위 '찍히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실력이 뛰어나거나 인기가 많아도 국회의원의 견제를 받는다. 지방의회 의원이나 기초단체장들은 국회의원 총선 경선에 출전해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현역 국회의원들은 '호랑이 새끼'를 키울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휘말려 해당 지방의원을 견제한다.

[서울=뉴시스]서울시의회 전경.

밥그릇 싸움이 횡행하는 정치판에서 국회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지방의회법을 통과시켜줄 가능성은 희박한 측면이 있다.

국회뿐만 아니라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의 직접적인 견제 세력인 집행부, 즉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역시 의회가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재 지방의회는 지방의회법이 아닌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지방의회 조직권과 예산권이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실정이다.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할 집행기관이 지방의회의 조직, 예산을 결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방의회는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의 소속 기관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지자체로서는 자신들이 쥐고 있는 조직권과 예산권을 놓을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서울시가 서울시의회 사무처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시장이 정한 예산 한도액 안에서만 사무처 예산을 쓸 수 있다. 서울시가 사무처 예산을 앞세워 시의회를 압박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서울시의회가 사무처 조직개편이나 정원 조정, 업무 분장 등을 지역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싶어도 서울시장의 협조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자체가 조직권을 무기 삼아 지방의회를 압박하는 단적인 사례가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발생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5일부터 서울시의회 사무처를 대상으로 최근 2년 간 예산 집행 실태와 복무 관리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 사무처 운영 전반에 관한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서울시의회 상임위원장단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상임위원장은 감사 때 자료 제출 거부로 대응하자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2024.04.30. dahora83@newsis.com

중앙정부 역시 지방의회를 편들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지방 재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8대2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지방 재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전체 세금의 80%를 중앙정부가 걷어가는 셈이다. 지자체는 자율적으로 지방세목과 세율을 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방이 중앙에 재정적으로 예속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교부세의 존재 역시 지방자치가 아직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교부세'란 중앙정부가 지자체 재정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내려주는 돈을 뜻한다. 행정자치부와 기획재정부는 이 지방교부세를 지렛대 삼아 지자체와 지방의회를 상대로 우위를 점해 왔다. 재정 분권을 하기에는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역량이 부족해 신뢰할 수 없다는 게 행자부와 기재부의 논리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민감한 사안이 있어도 행자부와 기재부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기 바쁘다. 행자부와 기재부에 밉보였다가는 자칫 지방교부세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와 기재부의 지방 홀대는 대통령의 의견 제시에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통령 초청 시도의회의장단 간담회'에 참석한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의장단으로부터 지방의회법 제정 지지 요청을 들은 뒤 행자부 장관과 기재부 장관을 향해 '광역의회 정도는 권한을 강화해도 되지 않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랬음에도 행자부와 기재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후속 조치도 없었다는 게 이 참석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사면초가인 탓에 지방의회법이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허울뿐인 한국 지방자치제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방의회를 희생시켜 온 국회와 지자체, 중앙정부의 반성과 태도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