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히스토리 ③] TPS, 제조업과 경영의 기준이 되다

2024. 5. 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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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봄, 토요타 생산 담당 토요다 에이지가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 공장을 방문한다. 목적은 분명했다.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당시 포드의 생산 방식은 포디즘(Fordism)이라 불리며 대량생산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드의 이 같은 생산 방식이 일본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당시 일본에서의 자동차 수요는 풍요로운 미국만큼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 사람들은 한 가지 제품이 아닌 다양한 제품을 두고 선택하는 경향이 짙었다. 연합국 극동위원회가 일본의 산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던 만큼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도 어려웠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도 포드의 방식을 도입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포드의 생산 방식에서 사람은 단순 반복 작업만을 하는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 기간동안 장인정신을 강조해왔던 일본에게 숙련도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 같은 방식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토요타 생산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 TPS)의 시작이다. 

 토요다 에이지가 선택한 방식은 미국의 절반만 따라가자는 것이었다. 새롭게 지어질 모토마치 공장은 경제 환경을 고려해 미국보다 절반의 장비와 기계, 절반의 노동력, 절반의 공장부지만 쓰기로 했다. 대신 생산 시간도 절반으로 줄이고 설비투자로 신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도 절반으로 줄이자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후 일본의 경제 상황은 미국의 어마어마한 투자 규모를 쫓아가기에 역부족이었다. 자동차 수요도 그만큼 많지 않았다. 덩치가 크면 움직임이 둔하듯 포드의 막대한 설비 투자는 자연스레 혁신을 늦출 것이라고 예견했다. 

 토요타의 엔지니어들은 이 때부터 기술 혁신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일본의 환경을 잘 이해해 일본만의 생산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1956년 당시 엔지니어였던 오노 다이이치를 미국으로 보낸다. 다시 한번 미국 자동차 생산 시설을 살펴보고 연구해와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이 때 오노 다이이치의 눈에 들어온건 자동차 공장이 아닌 미국의 슈퍼마켓이었다. 구매자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진열대에서 꺼내가 값을 치르고 나면 담당 매니저들은 빈 진열대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를 다시 채워넣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에야 당연한 운영 방식이지만 슈퍼마켓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일본인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물건이 채워지는 방식을 주시해 이를 자동차 생산에 응용한다. 소비자가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골라담듯 생산라인이 필요한 부품만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재고를 쌓을 필요가 없으니 거대한 부품창고가 필요하지 않았고 창업주의 철학이었던 '적시 생산 방식(Just in time)'에 부합했다. 


 이렇게 재고를 최소화 하는건 당시로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재고는 수요 예측과 실제 수요 사이의 완충재, 즉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여졌다. 이렇다보니 재고는 회계상으로도 부채가 아닌 자산으로 인정되어왔다. 오늘날에도 많은 기업들이 재고 처리 방법을 고민하는걸 생각해본다면 상당한 혜안이다. 

 오노 다이이치는 재고가 과잉비용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과잉생산으로 만들어진 재고는 필요 이상의 인원과 여분의 창고, 운반 인원, 운반 설비, 재고관리원, 품질관리원 등의 불필요한 요인들까지 야기시킨다고 생각했다. 재고가 없다면 모두 절감할 수 있는 요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지도카(自働化, 자동화)도 토요타만의 생산 기술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기계를 운영하는 데 있어 사람의 판단 능력을 더하는 방식이다. 토요타의 작업자들은 자신들의 판단 하에 자동차 생산 품질에 문제가 있을 경우 라인 가동을 멈춰세울 수 있었고 이는 문제가 생길 경우 공장 가동이 스스로 중단되는 형태로 진화했다. 


 토요타는 이를 진정한 자동화의 원점이라고 설명한다. 기계나 로봇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인간의 판단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는건 물론이거니와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정신에도 잘 맞았다. 

 여기까지만 봐선 철저히 일본의 문화에 맞춰진 생산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었다. 1984년 토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프리몬트에 NUMMI(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Inc.)라는 합작 공장을 세웠다. 토요타 생산방식에 입각해 철저한 직원 교육이 이뤄졌고 그 결과 토요타의 생산 체계가 서구권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걸 입증했다. 

 TPS는 1994년 영국으로도 뻗어나간다. TPS의 원칙을 적용해 유럽 시장에 적합한 고품질 신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버나스톤 공장은 지금도 유럽 내 토요타 공장 중 가장 뛰어난 수준의 생산 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요타 생산방식은 현재까지도 많은 산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체계는 낭비를 최소화하고, 품질을 최대화하는 원칙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제조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향후에도 TPS는 기술 발전과 환경적 요구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세계 제조업체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영감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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