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일!] "왜 눈썹이 없지?"… 천재가 남긴 마지막 작품의 의미

김인영 기자 2024. 5. 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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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망
1519년 5월2일 세계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망했다. 사진은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 초상. /사진=우피치 미술관
1519년 5월2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상을 떠났다.

다빈치는 세계적인 화가이면서도 조각, 발명, 건축,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천재로 유명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천재의 탄생, 화가부터 과학자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본격적인 화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사진은 지난 2016년 11월1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벽에 전시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모습. /사진=로이터
1452년 4월15일 이탈리아 피렌체공화국 토스카나에서 태어난 다빈치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농민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였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집에서 살게 된 다빈치를 돌봐준 어른은 숙부였다. 다빈치의 숙부는 어린 그를 살뜰히 보살폈고 이로 인해 다빈치의 재능이 드러났다.

다빈치의 아버지는 다빈치가 14세이던 때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그의 아버지는 피렌체로 이사를 가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 공방에 다빈치를 들여보내 그림을 배우게 했다. 20세가 된 다빈치는 스승이었던 베로키오의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꼬마 천사 두 명을 그렸다.

14세부터 공방에서 화가로 점차 자리매김하던 다빈치는 30세 이후 밀라노 공국에서 본격적인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밀라노 공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다빈치를 지원하면서 그의 유명한 작품이 대거 탄생했다. '암굴의 성모', '기마상', '최후의 만찬' 등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작품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제2차 이탈리아 전쟁으로 잠시 베네치아로 피신했던 다빈치는 1500년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성 모자와 성 안나' 제단화를 시작으로 수많은 연구 스케치를 남겼다. 해당 스케치에는 헬리콥터, 인체 비례도 등이 포함됐는데 다빈치의 과학·기술적 지식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평생의 라이벌 미켈란젤로를 만난 다빈치


당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고 라이벌이라 꼽히는 미켈란젤로. 사진은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1545년쯤에 그린 초상화의 모습. /사진=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다빈치의 생애 중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역시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미켈란젤로와의 만남이다. 다빈치는 1503년 피렌체 시청 벽화 작업을 의뢰받아 '앙기아리 전투'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다빈치 바로 옆편 벽에 '카시나 전투'를 작업하고 있었다. 세기의 라이벌이라 불리던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그림 대결을 펼친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의 대결은 중간에 끝나버린다.

당시 쉰을 넘긴 나이였던 다빈치와 20대였던 미켈란젤로는 서로의 존재에 큰 부담감을 느꼈다. 다빈치는 좀 더 특별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새로운 작업기구, 미술 재료를 고안했고 미켈란젤로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다빈치와의 대결을 위해 엄청난 양의 습작을 그렸다.

두 사람 다 서로를 의식하며 대결 준비에 나섰지만 결국 최종 순간 직전에 대결이 취소됐다. 다빈치는 새로운 물감 개발에 힘썼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벽화 일을 포기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새롭게 선출된 교황의 부름으로 인해 황급히 로마로 떠나며 벽화 작업을 취소했다.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두 거장의 대결은 그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나버렸다.



다빈치의 마지막 걸작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은 '모나리자'. 사진은 지난 2021년 5월1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를 감상 중인 관람객들의 모습. /사진=로이터
다빈치가 남긴 여러 그림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그의 말년에 완성됐다.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가치가 높은 미술품으로 평가받는 '모나리자'다. 다빈치는 1503년 '모나리자'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죽을 때까지 그는 '모나리자' 그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모나리자'를 보면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바로 눈썹이 없다는 것.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당시에는 이마가 넓은 여자가 미인으로 여겨져 눈썹을 밀거나 가늘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빈치가 원래 눈썹을 그렸으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림이 변색해 전체적으로 색상이 바뀌고 눈썹 부분도 희미하게 사라졌다는 가설도 있다.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마지막 역작으로 그가 죽기 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다빈치는 다양한 기술들을 이 작품에 도입했다. 정면이나 측면을 딱딱한 구도로 보고 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구도의 초상화, 원근법을 적용하고 흐릿하게 그린 배경 등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신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인영 기자 young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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