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숲에 딱따구리가 살아요!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4. 5.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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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리몬 주의 한 숲에서 딱따구리가 나무 둥지를 만들고 있다. 나무 조각은 땅에 떨어져 토양의 질을 높이고 숲을 무성하게 한다. EPA 연합뉴스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1887년 뉴욕의 쇼핑 구역에서 20대 남성이 무언가를 세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길거리를 걷는 여성들의 화려한 모자에 맞추어져 있었다. 모자에 하는 깃털 장식이 얼마나 유행하는지 통계를 내고 싶어서였다.

모두 700개의 모자를 봤고, 542개 모자에 깃털 장식이 있었다. 깃털은 딱따구리, 파랑새, 딱새, 올빼미, 왜가리 등 40종의 것이었다. 죽은 새 한 마리를 얹은 듯 모자를 ‘식탁’으로 사용한 이도 있었다. 당시 유행은 죽은 까마귀의 부리, 발톱, 다리를 얹은 모자였다. (필립 후즈의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참고)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가 살해됐다. 새들의 멸종은 유럽과 미국 사교계에서 중산층까지 번진 ‘깃털 열풍’이 초래했다. 20세기 초반, 오듀본협회 같은 단체가 창설되면서 잔인한 패션은 사라졌지만, 새들의 삶터인 숲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위력을 미치고 있다. 존중과 휴식과 하나 됨의 욕망이 아니라 파헤치고 짓고 세우고 돈을 버는 욕망.

미국 멸종사에서 흰부리딱따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상아처럼 하얀 부리와 큰 몸집을 가진 이 딱따구리는 1944년 관찰된 이후 국가적인 수색 작업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 정부는 2021년 흰부리딱따구리를 멸종위기종에서 제외하는 안을 발표했다. 마치, 우리 열심히 찾았잖아, 노력할 만큼 했으니, 멸종을 받아들이자고 속삭이듯. 하지만 민간 학계에서 또 다른 정황 증거를 대며 반대했다. 멸종을 인정하는 순간 다른 새들도 위험해질지 몰라!

왠지 천연기념물 같은 귀한 몸이신 거 같은데, 우리 숲에서 비교적 쉽게 마주치는 새가 있다. 눈을 감고 숲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통통통. 어딘가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망치질하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새알못’(새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한 지인도 여의도공원에서 오색딱따구리가 통통거리는 영상을 찍었다며 신나 했다. 국내에서는 쇠딱따구리, 아물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그리고 멸종위기종인 까막딱따구리 등 6종이 산다. 크낙새는 1980년대 멸종했다.

지난달 27일 ‘딱다구리보전회’가 창립했다. 과학자와 탐조가, 작가와 시민 40명은 ‘딱따구리는 ○○○이다’라고 손팻말을 써서 ‘우리 숲에 딱따구리가 살아요’ 하고 외쳤다. 건축가, 나무 의사, 사회복지사… 별칭이 다양했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고, 나무를 망치질해 구멍을 뚫고 집을 짓는다. 이때 나무 조각들이 땅에 떨어진다. 흙의 양분이 되어 숲을 우거지게 한다. 광합성량이 늘어나고 온실가스가 줄어든다. 김성호 공동대표(전 서남대 교수)가 말했다.

“딱따구리 집이 있는 나무는 태풍이 불면 쉽게 쓰러져 숲의 순환을 돕습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딱따구리와 바람과 비와 눈이 숲 가꾸기를 해왔죠.”

딱따구리 집은 다른 동물도 사용하는 게 포인트다. 하늘다람쥐, 소쩍새, 솔부엉이, 호반새 등이 차례로 깃든다. 딱따구리 집은 난개발로 숲에서 힘겹게 사는 생명들의 삶의 힘을 북돋는다. 그래서 딱따구리는 건축가이자 나무 의사이자, 사회복지사다. 숲의 건강함을 돕고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는 핵심 일꾼이다.

빔 벤더스가 제작하고, 마르텐 페르시엘이 연출한 2021년 영화 ‘에브리띵 윌 체인지’는 2054년의 첨단 기술 유토피아를 다룬다. 대형 태양광 단지와 풍력 단지가 모든 땅을 점령한 것으로 보아 기후위기는 어느 정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생동물은 전면 멸종해, 목이 긴 기린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도 젊은이들이 믿지 못한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술 혁신에 인류의 판돈을 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디지만 생태계를 복원해 자연의 힘을 믿어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첫 번째 방식이 성공한 미래를 다룬다. 태양에너지를 각각 반사, 흡수하는 우주거울과 인공구름, 바다의 염분과 해류를 조정하는 극지의 빙하 댐, 대기 중 온실가스를 직접 흡수하는 기계, 북극 바다 얼음을 다시 얼리는 장치 등의 기술이 요행히 통했을 미래다. 반대급부로 기상이변과 서식지 파괴 등 기후공학이 만든 혼란에 숲과 딱따구리는 사라지고, 적응력 높은 ‘부자 인간’만 살아남을 것이다. 두 가지 미래 중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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