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명암 엇갈리는 재개관전…발굴 도면과 친일작품 함께 나와

노형석 기자 2024. 5.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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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일반 공개
1년 7개월 공사 끝에 재개관한 간송미술관 정면 돌출부와 바로 옆 신설 연구동. 노형석 기자

“1층에 나온 미술관 설계 도면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 간송 선생이 활동하던 시대로 들어간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이렇게 모던한 건물을 사적으로 짓고 수집품을 들이는게 얼마나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절로 생각이 들더군요.”

1일 오전 전시를 시작한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에서 20대 직장인 김현재씨가 털어놓은 소감이다.

일제강점기 막대한 문화유산을 수집하며 지켜낸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컬렉션이 단장된 전시관에서 다시 시민과 만나게 됐다. 1938년 11월 간송이 국내 최초의 사설 미술기관으로 서울 성북동에 세운 간송미술관(건립 당시 명칭은 보화각)에서 11년 만에 정기 기획전시회가 차려졌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마련한 재개관 특별전 ‘보화각 1938 :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이다. 2022년 10월부터 1년7개월 동안 공사를 거쳐 미술관 내외부의 보수·복원과 대형 수장고 건립 등을 마무리하고 새출발을 알리는 자리다.

이완용과 더불어 매국노 친일파의 거두로 꼽히는 민영휘의 71살 생일을 기념해 당시 문인예술가 12명이 글씨와 그림을 그려 바친 ‘축수서화 12폭 병풍’이 간송미술관 2층 전시실 안쪽에 놓여있다. 이른바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맞아 축수를 하는 의미의 병풍인 ‘망팔병풍’으로, 민영휘에 대한 낯뜨거운 아부성 찬사로 채워진 내용이어서 출품작 선정이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형석 기자

미술관 건물과 주변이 크게 바뀌었다.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1938년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미술관 초창기 공간을 되살려냈다. 1970년대~2010년대 이 미술관에서 전시·연구를 이어가며 간송컬렉션을 널리 알린 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최완수 소장과 그의 제자들이 연구실 서재로 사용했던 2층 돌출부(선룸)와 안쪽 공간은 간송의 생전 집무실과 응접실, 작은 서재로 복원했다. 사시사철 쑥부쟁이, 국화, 수국 등의 다채로운 풀꽃이 피어났던 미술관 건물 측면과 성북동 능선 한양도성을 마주보는 마당 정원은 지하에 대형수장고가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졌다.

1층에 전시된 1938년 미술관 건립 당시 박길룡 건축사무소에서 보내온 자료봉투. 노형석 기자

1, 2층으로 나뉘어 열리는 재개관전은 미술관을 세운 초창기 과정과 당시 간송이 수집한 서화 컬렉션 일부에 초점을 맞췄다. 출품작과 관련 유물들은 47건, 102점으로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1층 전시장은 보화각의 건립과 관련된 사료와 유물에 주목한다. 조선 최초의 근대적 건축가로 평가되는 박길룡이 1938년 4월20일 간송에게 제출한 보화각 설계도면 4종과 그해 8월16일 낸 설계변경허가신청서, 진열장 제작 과정을 담은 도면 등이 나온다. 1936~1938년 간송이 추사 김정희와 단원 김홍도 등의 서화 구입 내역을 기록한 일기대장에는 구매처, 품목, 가격, 표구 및 기록의 과정, 유물이 보화각에 도착하는 경로까지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간송이 일본 오사카미술관을 직접 돌아보고 그린 진열장 친필 스케치와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가구장식부가 담당한 최고급 진열장과 가구의 도면 등도 나와 당시 간송이 얼마나 열정을 기울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구한말인 1908년 일본이 좌지우지하던 대한제국 조정에 일본화가 사쿠마 테츠엔이 들어가 그린 뒤 고종 황제에게 바친 ‘이백관폭도’. 경술국치의 주역(경술국적)인 친일파 농상공대신 조중묵이 하사받아 보관했던 작품이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경술국치의 또다른 주역인 친일파 중신 민병석의 글씨로 이런 사실을 기록한다는 설명글(찬)이 붙었다.
민영휘의 71세 생일을 기념해 문인예술가 12명이 바친 ‘축수서화 12폭 병풍’의 일부분. ‘장수와 부귀를 누리고 많은 자손을 낳아 무강의 빛을 발하고, 세상을 돌며 영재를 키우는 불후의 덕을 세웠다’는 김돈희의 글귀가 지운영의 고사 그림과 함께 보인다. 노형석 기자
2층에 나온 김영의 ‘부춘산매화서옥도’. 노형석 기자

2층은 건립을 전후한 시기에 간송이 수집한 알려지지 않은 서화 유물 모음전이나 구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과 한일병합 당시 적극 부역한 매국 친일파 중신 민영휘와 조중응에게 바치거나 내려주어 이들이 소장했던 작품들이 포함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안쪽에 자리한 ‘축수서화 12폭 병풍’은 1922년 5월 71세 생일을 맞은 당시 친일파의 거두이자 일본 귀족(자작) 민영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면서 김용진, 윤용구, 지운영, 김돈희, 이도영, 정대유, 심인섭, 오세창, 민형식 등 12명의 문인들이 축하 용도의 글씨와 그림들을 한폭씩 제작한 작품이다. 민영휘의 친일행적 등은 언급되지 않고 그림이 그려진 경위만 설명했다. 구한말인 1908년 일본이 좌지우지하던 대한제국 조정에 일본화가 사쿠마 테츠엔이 그려 고종 황제에게 바친 그림을 경술국치의 주역인 친일파 농상공대신 조중묵이 하사받아 보관하던 `이백관폭도‘도 이런 친일 내력에 대한 설명 없이 내걸렸다.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들도 있다. 조선 후기 나비 그림의 대가로 꼽힌 남계우의 작품과 함께 나온 제자 고진승의 나비 족자 그림은 기록만 남아있었는데, 처음 실물이 확인됐다. 한국화단의 대가 심산 노수현(1899∼1978)이 늦은 가을 고적한 산골 마을을 그린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추협고촌’도 처음으로 실물이 내걸렸다.

2층 서화 전시실 전경. 노형석 기자

국내 화가로는 처음 미국에 건너가 현지 풍경을 그린 구한말 대한제국주미공사관원 강진희의 산수화 ‘화차분별도’도 간송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포함해 강진희와 교분을 나눈 당시 청국 주미공사관원 팽광예의 작품 8점이 함께 실린 ‘미사묵연 화초청운잡화합벽첩’의 전면이 최초 공개된다.

심산 노수현의 1930년작 ‘추협산수’. 2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간송미술관은 2019년 12월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시설 노후화로 국고보조금 23억원을 들여 2022년 10월부터 보수·복원 공사를 벌인 끝에 최근 대형 수장고와 바로 옆에 연구동을 갖춘 현대식 시설로 단장했다. 해마다 봄·가을에 2주씩만 열던 정기 전시 기간을 연 90일로 늘릴 방침이다. 재개관 특별전은 6월16일까지. 인터파크티켓에서 예약 뒤(한 시간당 100명씩) 무료 관람할 수 있으며 이달 29일 문화의 날엔 예약없이 입장 가능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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