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외국인]②오징어순대도 외국인 손맛…“유학생 없으면 지방 전멸”

속초·고성=홍다영 기자 2024. 5.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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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조리·서빙·설거지·포장·계산 다 하는 유학생들
오전에 고성 대학서 수업 듣고 오후에 속초서 돈 벌어
고성서 20대 찾으면 3명 중 1명은 외국인
인구 소멸 빨라지자 빈자리 외국인 속속 채워

지난해 말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총 250만7584명. 전체 인구(5132만명)에서 4.89%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이 비율이 5%를 넘어가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올해부터 한국은 ‘다문화·다인종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력이 부족해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지, 다른 국가와 비교해 국내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짚어본다.[편집자 주]

“오징어순대 맛보세요. 감자전도 있습니다. 100% 국산 감자를 직접 갈아서 만들었어요.”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강원 속초시 속초관광수산시장 튀김 골목. 지난 25일 오후 남아시아에서 온 한 남성 외국인 유학생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강판에 감자를 갈며 이렇게 외쳤다. 유학생의 능숙한 호객(呼客) 행위에 손님 몇몇이 발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보였다. 맞은편 닭강정 가게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 온 남녀 유학생들이 질세라 목청껏 손님을 불렀다. “바삭한 닭강정 있습니다. 안쪽 자리로 들어오세요.”

튀김 골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국적은 베트남, 네팔, 방글라데시 등 다양했다. 가게마다 2~4명씩 있는 유학생들은 오징어순대에 계란물을 입히고 닭과 새우를 튀기며 전을 뒤집고 있었다. 조리, 서빙, 설거지, 포장, 계산까지 ‘일당백’이었다.

유학생들은 왜 본국에서 3000~4000㎞ 떨어진 한국의 소도시 속초의 전통시장까지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까. 인구 8만명대의 동해안 관광 도시 속초시를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 2500만명에 달했다. 고령화도 겹쳐 일손이 부족한데, 관광객이 물밑듯이 밀려와 유학생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 상인들 설명이다. 유학생들도 본국보다 시급이 높아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안해도 경제적으로 더 낫다고 한다.

지난 25일 강원도 속초시 속초관광수산시장 튀김 골목에서 베트남 유학생 응웬 득 쭝(20)씨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홍다영 기자

◇”알바비 더 줄게요”…상인들 유학생 모시기 경쟁

베트남 북부 타이빈성 출신인 응웬 득 쭝(20)씨는 이날 빨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튀김 가게에서 손님에게 메뉴판을 건네고 있었다. 그는 작년 9월 일반연수(D-4) 비자로 입국해 강원 고성군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응웬씨는 “베트남에서 1년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리 잡은 지인 소개로 유학을 왔다”며 “속초시장은 관광객이 많아 한국어로 손님과 자주 대화할 수 있어 어학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응웬씨의 하루는 이렇다. 오전 7시 30분쯤 기상, 대학교에서 점심시간 전까지 수업을 듣고 버스를 타고 약 7㎞ 떨어진 속초시장으로 넘어온다. 시장에서 오후 2시쯤부터 일하기 시작해 손님이 많으면 밤 9시쯤에 마친다. 이렇게 일을 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0만원 남짓. 그는 “베트남 대학생들은 보통 시급 3만동(16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한국은 그보다 경제적으로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응웬씨는 졸업 후 베트남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속초시장 상인들도 유학생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튀김 가게 직원 김모(39)씨는 “하루 매출이 400만~500만원씩 나올 정도로 관광객이 많은데 일할 사람은 부족하다”며 “코로나 시기를 거친 뒤 작년부터 유학생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학생 입장에서도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라고 했다.

상인들의 ‘유학생 모시기’ 경쟁도 치열하다. 유학생들은 보통 1만원 수준의 시급을 받고 일하는데 옆 가게에서 시간당 몇백원만 더 줘도 곧바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외국인은 꼭 필요한 존재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한국인들은 몸 쓰는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며 “유학생이 없으면 지역은 전멸한다”고 했다. 속초시청 관계자는 “유학생들은 시장에서 일하고,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은 농공단지나 해양산업단지에서 명태 가공 등을 한다”고 전했다.

지난 25일 강원도 속초시 속초관광수산시장 튀김 골목에서 유학생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홍다영 기자

◇고성 대학교 앞 핫플은 ‘외국 식자재 마트’…”유학생 있어서 그나마 상권 유지”

다음날인 26일 오전 응웬씨가 재학 중인 고성군의 대학교 캠퍼스에서는 한국인 학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와 농구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잔디밭에 앉아 모국어로 대화하거나 담배를 피웠다. 학교 건물에는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를 정해진 자리에 주차하세요”라는 안내문이 영어로 붙어 있었다. 한글 안내문은 없었다. 마치 해외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대학교는 재학생 1000명 중 약 900명이 유학생이다. 22학번 네팔 출신 프로밀라(22)씨는 “오전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족발집에서 일한다”며 “친구들과 함께 해서 유학 생활이 할 만하다”고 했다. 다른 네팔 유학생 수프리아(20)씨는 “K팝에 관심 많아 한국에 왔다”며 “비즈니스를 공부하고 조갯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비중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지만, 고성군은 이미 다문화·다인종 사회다. 행정안전부와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고성군 주민등록 인구는 2만7220명. 90일을 초과해 체류하고 있는 등록 외국인은 1757명으로 6.5% 수준이다. 20대가 1281명으로 3분의2 수준이다. 고성군에 주민등록을 둔 20대는 2450명. 이곳에서 20대를 찾으면 3명 중 1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지난 26일 강원도 고성군의 한 대학교에서 유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다영 기자

유학생들이 모여들면서 대학 인근 ‘핫플’은 외국 식자재 마트가 됐다. 이 마트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중앙에는 태국 쌀, 향신료, 과자, 망고 주스 등이 진열돼 있었고 국산 식자재는 가장 밑에 있는 식용유 같은 것뿐이었다. 방글라데시 출신 식자재 마트 주인은 “태국 쌀과 닭고기가 제일 잘 나간다”고 했다.

다른 외국 식자재 마트는 주방과 테이블을 마련하고 양고기 볶음밥과 치킨 볶음국수, 사모사(인도식 삼각 만두)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마트 주인 김모(54)씨는 원래 속초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가 방글라데시 출신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대학교 앞에 외국 식자재 마트가 없고 음식 사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5년 전부터 장사를 하고 있다. 김씨는 “손님 90%가 유학생”이라며 “유학생이 있어서 그나마 상권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6일 강원도 고성군의 한 대학교 앞에 있는 외국 식자재 마트. /홍다영 기자

유학생들은 이날 대학교 앞 편의점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이나 빵, 커피를 먹고 있었다. 편의점 직원은 “유학생이 하루에 300명쯤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고성군의 한 택시 기사는 “이 근방은 어업·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대부분 유학생을 대상으로 원룸 월세를 받거나 식당, 편의점 등을 하고 있다”며 “지역 경제가 유학생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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