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달로 간 우주인, 벽 타고 달리기 서커스로 운동

이영완 기자 2024. 5.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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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 안쪽 벽 타고 달리는 오토바이 서커스 모방
달처럼 약한 중력에선 사람도 벽 달리기 가능
몇 분씩 하루 두 번이면 무중력 건강 문제 해결
번지 줄을 단 여성이 벽을 타고 달리는 모습. 오토바이로 원통 벽을 타고 달리는 서커스가 있지만 사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달처럼 중력이 약하면 사람도 수직 벽을 수평으로 달리며 운동할 수 있다./이탈리아 밀라노대

1968년 개봉한 SF(과학)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우주인이 곡선 복도를 따라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은 무중력 상태여서 우주인들이 둥둥 떠다닌다. 영화 속 힐튼사의 우주정거장은 거대한 바퀴를 회전시켜 인공 중력을 만들었다. 바깥으로 향하는 원심력이 바퀴 안쪽의 사물을 잡아당긴 것이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영화보다 더 간단하게 인공 중력 효과를 낼 방법을 찾아냈다. 서커스 공연장에서 원통 안쪽 벽을 타고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달에서 우주인이 원통 안쪽에서 벽을 따라 달리면 지구처럼 중력을 받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실현되면 중력이 약한 우주에서 근육이 소모되는 문제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회전하는 원형 우주정거장 안에서 달리기를 하는 모습. 원통이 회전하면서 인공 중력을 구현했다./워너 브러더스

◇서커스장에서 달의 중력 환경 구현

이탈리아 밀라노대의 알베르토 엔리코 미네티(Alberto Enrico Minetti) 교수 연구진은 1일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미래 달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원형 벽 안쪽을 하루에 몇 바퀴만 돌면 약한 중력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류는 1972년 미국의 아폴로 17호 이래 중단된 유인(有人)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이번에는 며칠 머물다 오지 않고 기지를 세워 장기 체류할 계획이다. 그러려면 중력이 약한 달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달은 중력이 지구의 약 6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 곳에 오래 있으면 근육이 위축되고 뼈도 약해진다.

미네티 교수 연구진은 오토바이를 타고 원통 안쪽 벽을 달리는 서커스인 ‘죽음의 벽(wall of death)’에서 문제를 해결한 영감을 얻었다. 오토바이가 원통 벽을 따라 고속으로 달리면 관성이 오토바이를 벽으로 밀어붙여 바깥쪽으로 향하는 원심력이 생긴다. 이 힘은 벽과 오토바이 타이어 사이에 마찰을 일으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다.

사람은 오토바이처럼 지구 중력에 대항하는 데 필요한 관성을 생성할 만큼 빠르게 달릴 수 없다. 하지만 중력이 작다면 이론적으로 사람도 오토바이처럼 벽을 타고 달릴 수 있다고 연구진은 생각했다. 밀라노대 연구진은 중력이 약한 달의 환경을 모방한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지름 9.7m, 높이 5m인 죽음의 벽 서커스 공연장에서 탄성이 있는 번지 줄로 남녀 지원자 두 명을 연결했다. 번지 줄이 몸을 지탱하자 체중이 83% 가벼워졌다. 중력이 약한 달과 같은 환경을 만든 것이다. 두 사람은 몸이 가벼워지자 원형 벽을 따라 초속 6m(시속 21㎞)로 달릴 수 있었다. 미네티 교수는 “두 사람은 수직 벽을 따라 수평으로 달리면서 일종의 인공 중력을 경험했다”며 “하루에 두 번, 몇 분만 달리면 약한 중력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토바이로 원통 벽을 타고 달리는 서커스 모습.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달처럼 중력이 약하면 사람도 수직 벽을 수평으로 달리며 운동할 수 있다. 사람을 번지 줄에 매달아 달처럼 중력이 약해 체중이 감소하는 상황을 구현했다./이탈리아 밀라노대

◇우주인의 운동 형태 바뀔 수도

인류가 달과 화성에 기지를 세우고 장기간 탐사하려면 먼저 중력이 약한 환경에서 우주인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력이 약한 우주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서 있으면 중력에 의해 피가 아래로 내려가지만, 중력이 거의 사라진 우주에서는 몸 어느 곳이나 균등하게 피가 흐른다. 지구보다 머리에 피가 더 많이 가 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은 늘 얼굴이 부어 있다. 미국 텍사스대의 래리 크레이머(Larry Kramer) 교수 연구진은 2020년 국제 학술지 ‘영상의학’에 “우주여행을 다녀오면 1년 뒤에도 뇌 부피가 2% 증가한 상태로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국제우주정거장을 다녀온 우주인 11명(남성 10명, 여성 1명)을 대상으로 우주로 가기 전과 지구로 귀환한 후 각각 뇌 형태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로 촬영했다.

몸도 변한다. 뼈에서 칼슘이 한 달 평균 1% 줄어든다. 근육에서는 단백질이 빠져나간다.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에 탑승했던 우주인들은 1년 뒤 약 20%의 근육 단백질이 감소했다고 알려졌다. 우주에 오래 머물면 점점 머리는 부풀고 팔다리는 가는 영화 속 우주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말이다.

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은 이런 신체 변화를 막기 위해 하루에 2시간씩 밧줄을 몸에 매달고 달리며 운동한다. 이번 연구진은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우주인처럼 원통 안쪽에서 벽을 따라 달리면 충분한 운동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미네티 교수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추진 중인 달 기지에서 같은 방법으로 우주인이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일란 켈만(Ilan Kelman) 교수는 “특히 달 정착지의 제한된 공간을 고려할 때 우주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시간과 비용 면에서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미국 우주인 앤드루 모건이 몸을 줄로 고정한 상태로 사이클을 타며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다./NASA

참고 자료

Royal Society Open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098/rsos.231906

Radiology(2020), DOI: https://doi.org/10.1148/radiol.202019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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