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블랙리스트'로 적색 공포를 조장한 美 극우 선동가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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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5월 2일, 미국의 정치인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가 48에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산주의 광풍을 주도했던 인물로, '매카시즘'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매카시즘에 피로감이 극에 달한 미국 사회는 국가 안보보다 사상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했다.
하지만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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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7년 5월 2일, 미국의 정치인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가 48에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산주의 광풍을 주도했던 인물로, '매카시즘'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상호 대립의 냉전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국 사회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불안감과 적대감이 커져갔다.
1950년 2월, 공화당 상원의원(위스콘신)이던 매카시가 국무부 내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잠입해 있다고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이 발표를 계기로 매카시즘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이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공포를 조장했다. 또한, 사회 전반에 걸쳐 적발과 숙청 분위기를 조성했다.
매카시는 특히 정부기관, 교육기관, 언론, 예술계 등을 집중 공격했다.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은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인신공격을 가했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개인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는 허위 고발과 무분별한 탄압이 만연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명예를 잃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1954년 3월 9일 CBS의 시가 프로그램 '시 잇 나우'(See It Now)에서 에드워드 머로 기자가 매카시의 주장이 허위임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를 계기로 여론이 반전됐다. 매카시즘에 피로감이 극에 달한 미국 사회는 국가 안보보다 사상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했다. 같은 해 4월 미 상원은 매카시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그에 대한 비판 결의를 채택했다. 이로써 매카시즘의 광풍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이 부당한 탄압을 받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자유로운 분위기가 위축됐다. 또한, 미국 사회 내의 반공주의가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매카시즘은 권력 남용, 허위 정보 유포, 표현의 자유 침해 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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