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아빠 과학자]① 육아휴직 남성 늘어야 과학기술계 인재유출 막는다

이채린 기자 2024. 5.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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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꿈꾸거나 이미 과학자의 길로 접어든 남성들이 '육아'라는 단어에 한층 더 자신감이 생기기를 기대하며 동아사이언스는 WISET과 '육아하는 아빠 과학자' 인터뷰 시리즈를 게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편집자 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느는 추세지만 현장 경험과 연구 지속성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만큼 자녀를 위해 연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30, 40대 아빠 과학자에게 육아휴직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예외여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해야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 육아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남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삶과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합리적,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에너지 기술을 연구하는 30대 '과학자 아빠' A씨는 돌쟁이 자녀를 위해 2022년 1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한창 말을 배우는 자녀를 온전히 돌보고 싶었고 자녀를 낳고 키우느라 일을 쉰 아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굳건한 결심과는 달리 육아휴직을 다녀오겠다고 회사에 말하기 직전까지 망설였다. 주변에 육아휴직을 쓴 남성 과학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연구 경력이 끊기는 부담감과 혹시나 동료에 미칠 피해를 생각해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되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전히 이같이 육아지원 제도를 쓰기 쉽지 않다. 주변 분위기뿐 아니라 육아를 하면서 연구 지속성을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대표적인 육아지원 제도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 과학자'가 많아지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연구개발기관의 육아휴직 제도 보유율은 99%이다. WISET이 지난해 발표한 '2022년도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육아 휴직자 수는 2013년 91명, 2017년 265명, 2022년 889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었다.

육아휴직 전체 이용자 중 남성 비율은 2013년 6.7%, 2017년 9.8%, 2022년 32.5%로 점점 늘어났다. 2013년에 비해 2022년은 4배 증가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남성 10명 중 7명은 해당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30%대의 남성 육아휴직 비율은 과학기술계에 육아휴직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학기술계는 남성인력 비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위셋, WISET)이 지난해 발표한 '남녀 과학기술인력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 26만2923명 중 남성이 20만3163명으로 77.3%로 3분의 2를 훨씬 넘는다.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과학자가 육아를 위해 일을 쉬거나 줄이는 건 어려운 선택이다. 연구는 보통 소규모로 팀을 이뤄 진행되기 때문이다. 각 전문 분야 지식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달린다. 여기서 한 명이 빠지면 연구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전문인력일수록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연구책임자를 맡거나 1~3년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경우 더 어렵다.

이같은 이유로 WISET의 ‘남녀 과학기술인 양성 및 활용 통계 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경력단절 여성 규모는 18만여 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육아지원 제도를 쓰는 과학자 아빠가 많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성이 육아에 적극 나서는 문화가 확산돼 경력단절 여성 규모를 줄여 과학기술계에 인재 규모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2023년 800명 가량 부족한 과학기술분야 인력 규모는 2024~2028년 4만7000명으로 급속히 불어날 전망이다. 점차 늘어나는 과학기술 수요와 이미 낮은 출생률이 맞물리면 이러한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해진다.

권지혜 WISET 정책연구센터장은 "과학기술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성이 육아지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전 구성원이 부담없이 이 제도를 쓰고 누구나 경력단절 걱정 없는 주류 문화가 만들어진다"면서 "이를 통해 경력단절 여성 규모가 줄어들면 과학기술 인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재를 유입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소재를 연구하는 40대 여성 과학자 B씨는 "남성 동료가 육아를 위해 단축근무 제도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자신있게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정책연구센터장은 "요즘은 대학생 때부터 '워라밸'과 일과 육아를 할 수 있는 '일-가정 양립'이 직장을 선택하는 주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과학기술계에 누구나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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