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한국! 나 세계 최대 티라노 ‘스코티’가 왔다

김연희 기자 2024. 5. 2.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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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천과학관은 공룡 연구 200주년을 기념해 세계 최대 티라노사우루스인 스코티의 전신 골격을 전시한다. 유명하지만 의외로 잘 모르는 공룡계 슈퍼스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월17일 국립과천과학관 중앙홀 2층에서 ‘스코티’ 전신 골격 레플리카와 관련 전시물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올해, 공룡 연구는 200주년을 맞이했다. 1824년 영국 옥스퍼드셔 카운티에서 거대한 턱뼈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화석이 발견되었다. 공룡(Dinosaur)이 수천만 년의 세월을 뚫고 호모 사피엔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도마뱀이라는 뜻에서 ‘메갈로사우루스’라 불린 최초의 화석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000여 종의 공룡이 확인되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그 가운데 단연 슈퍼스타이다. 공룡 연구 200주년을 기념해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 ‘스코티(Scotty)’가 한국에 온다. 경기도 과천시에 자리한 국립과천과학관은 4월24일부터 8월25일까지 〈세계 최대 티라노사우루스〉 특별전을 개최한다. 스코티가 발견된 캐나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전체 몸길이 13m, 골반까지 높이 4.5m에 이르는 전신 레플리카(복제품)가 과학관 중앙홀 2층에 전시된다.

〈시사IN〉은 4월17일 막바지 설치 작업이 한창인 과천과학관을 찾았다. 스코티 전신 골격은 이미 조립이 끝났고, 티라노사우루스 연구의 족적을 설명하는 안내 문구를 추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4월16일에는 공룡 박사인 박진영 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 선임연구원을 만나, 너무도 유명하지만 의외로 잘 모르는 티라노사우루스 이야기를 들었다.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은 1800년대 말부터 보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발견된 화석은 대부분 작은 뼛조각에 불과했다. 한 고생물학자는 티라노사우루스의 골반과 다리뼈 일부를 보고 ‘타조를 닮은 힘센 동물(오르니토미무스 그란디스)’이라는 엉뚱한 학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실제로 티라노사우루스의 뒷발은, 크기는 훨씬 거대하지만 조류의 발과 상당히 유사한 모양이다.

스코티의 뒷발. 티라노사우루스의 뒷발은 조류의 발과 상당히 유사한 모양이다. ⓒ시사IN 박미소

1902년 미국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였던 바넘 브라운이 미국 몬태나주에서 온전한 골격 화석을 발견하면서 티라노사우루스는 비로소 새로운 종류의 거대 육식공룡으로 확인되었다. 폭군 도마뱀을 뜻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는 학명도 이때 지어졌다. 1905년 12월, 티라노사우루스 골격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2월3일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를 1면으로 다루었다. ‘가장 강력한 싸움꾼’ ‘동물의 왕국을 지배한 왕 중의 왕’ 등의 칭호가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부여됐다.

지금까지 화석으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개체 수는 40여 마리다. 적은 수로 보이지만 ‘공룡계’에서는 상당한 숫자이다. 박진영 박사는 “트리케라톱스(머리에 뿔 세 개가 난 공룡)처럼 수백 마리가 발견된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공룡 한 종당 발견된 화석 표본은 한 개에 그친다”라고 말했다.

‘스카치 위스키’와 스코티의 관계

이번에 과천과학관에서 전시되는 스코티는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중 가장 크다. 익숙한 물체에 비견하자면, 시내버스 한 대 크기다. 상체를 들어 올리면 2층 버스 높이와 비슷해진다. 무게는 8.87t으로 코끼리 두 마리를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다. 박진영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성장한다면 어디까지 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개체”라고 스코티를 설명했다.

스코티의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였을 걸로 추정된다. “다리라든지 정강이 뼈 같을 걸 썰어서 보면 나무의 나이테처럼 성장선이 있어요. 그걸 세면 동물이 죽었을 때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화석으로 발견되는 티라노사우루스는 대부분 20대 후반이다. 마흔을 넘긴 티라노사우루스는 없다. 스코티는 티라노사우루스 기준으로는 ‘노인 공룡’인 셈이다. 스코티 전까지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의 타이틀은 미국 필드 박물관이 소장한 ‘수(Sue)’가 가지고 있었다. 몸무게 8.46t으로 수 역시 육중한 공룡이었다.

스코티는 1991년 캐나다 중부 내륙지역인 서스캐처원주에서 발견되었다. 스코티라는 별명은 발굴 기념으로 마신 스카치 위스키에서 따왔다. 공식 명칭은 RSMP 2523.8이다. 왕립 서스캐처원 박물관(Royal Saskatchewan Museum)에서 소장하고 있는 표본이라는 뜻이다. 스코티를 처음 찾아냈을 당시에는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격적인 발굴은 1994년에 시작되었고 완료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박진영 박사는 큰 공룡일수록 발굴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에서 박진영 선임연구원이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모형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수(Sue) 같은 경우는 화석 일부가 절개면 밖에 튀어나와 있었지만 일부는 절벽 안에 끼어 있었어요. 그러면 화석이 들어 있는 부분만 굴처럼 파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절벽을 다 깎아낸 뒤에 발굴을 해야 합니다. 스코티는 절벽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차가 진입하기 힘든 지역에서 발견됐어요. 가지고 나올 때 마차를 쓰거나 해야 하니까 완료하기까지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게 되죠.”

화석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뼈만 추려오는 것이 아니다. 뼈와 주변 암석을 통째로 뜯어와야 한다. 발굴 현장에서 세밀히 작업하기 어려운 까닭도 있지만 오랜 시간 땅속에 눌려 있었던 뼈를 바로 끄집어내면 뼈가 “스스륵” 하고 부스러진다. 깊은 바다에 사는 심해어를 육지로 끄집어내면 눈이 튀어나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암석째로 가져온 화석에서 치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기기처럼 섬세한 도구를 이용해 서서히 공룡뼈를 발라낸다. 화석 처리까지 끝이 나야 고생물학자가 학술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스코티가 무게 8.8t에 달하는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임을 확인한 논문이 2019년 발표되었다.

스코티의 실물 화석은 왕립 서스캐처원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스코티 모형은 한국에 온 것과 동일하게 레플리카다. 광물이 침투돼 화석화된 공룡뼈는 매우 무거워서 설치가 어렵고, 학자들이 연구하는 데에도 제약을 받는다. 요즘 박물관에 전시되는 공룡 뼈의 90%는 복제품이다.

복제품이라 해도 아무 데나 맡겨서 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코티 레플리카는 왕립 서스캐처원 박물관이 지정한 전문업체인 ‘리서치 캐스팅 인터내셔널’에서만 주문할 수 있다. 제작비의 일부는 인세처럼 화석을 보유한 박물관에 돌아간다. 공룡 화석 레플리카를 제작하는 업체 자체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올 3월 한국에 들어온 스코티 표본은 캐나다 두 개, 일본 전시 한 개에 이은 네 번째 레플리카다.

국립과천과학관 <세계 최대 티라노사우루스> 특별전에 전시될 티라노사우루스의 뇌 모형. ⓒ시사IN 박미소

이번 전시에서는 CT 촬영을 통해 3차원으로 복원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뇌 모형도 만날 수 있다. 공룡 두개골에서 뇌를 둘러싸고 있는 뼈 구조를 뇌함(Braincase)이라고 부른다. 뇌 화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생물학자들은 이 뇌함의 모양을 본떠서 역으로 티라노사우루스의 뇌 구조를 알아냈다. 뇌의 각 부위별 크기로 추론한 결과 티라노사우루스는 후각이 매우 발달하고, 시각과 청각도 예민했던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후각은 1㎞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담배꽁초 냄새를 맡았을 법하고, 시력은 사람보다 약 13배 더 좋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독수리의 시력이 사람보다 3.6배 더 뛰어나다. 스코티의 골격에서도 두 눈 사이 위치쯤에 위쪽으로 뻥 뚫려 있는 뇌함을 찾을 수 있다.

박진영 박사는 “스코티 주둥이의 미세한 구멍을 살펴보라”고 관람 ‘꿀팁’을 전했다. 억세고 뾰족뾰족한 이빨이 솟아 있는 스코티의 아래턱에는 실제로 촘촘히 구멍이 뚫려 있다. 신경이 지나간 자리다. 이를 통해 고생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아래턱에 신경세포가 집중돼 있으며 다른 공룡에 비해 촉각에 예민한 주둥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본 연구가 있는데 티라노사우루스가 신경이 발달한 턱으로 무엇을 했을지 추론한 연구였어요. 오늘날 살아 있는 동물 중에 이만큼 신경세포가 많이 발달돼 있는 동물이 악어예요. 악어가 이 예민한 주둥이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새끼를 보살피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요. 둥지 온도가 적정한지 체크하고, 알에서 잘 깨어나지 못하는 새끼가 있으면 입에 넣고 살살 돌려서 껍질을 깨주기도 하고요. 티라노사우루스도 그렇게 새끼를 잘 돌보는 모성애 혹은 부성애 강한 동물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가설입니다.”

20세기 초 ‘폭군 도마뱀’으로 무대에 올랐던 티라노사우루스와 오늘날 과학자들이 밝혀낸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꽤 다르다. 당시에는 꼬리를 질질 끌면서 뒤뚱뒤뚱 걷는 굼뜬 동물로 묘사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공룡 발자국 화석이 연구되었지만 꼬리를 끈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공룡이 매우 활동적인 동물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스코티의 아래턱. 이빨 아래 작은 구멍은 신경이 통과했던 자리다. ⓒ시사IN 박미소

알고 보면 따뜻한 공룡?

요즘 박물관에 전시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과거와 달리 꼬리를 치켜들고 곧바로 사냥에 나설 것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큰 보폭을 이용해 1초에 7~8m를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나서 도망쳐봤자 사람은 무조건 잡히게 돼 있다”라고 박진영 박사는 설명을 덧붙였다.

새끼에게는 ‘따뜻한 공룡’이었을지 몰라도 후기 백악기(6900만~6500만 년 전) 최상위 포식자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은 다른 육식공룡과 비교해도 유독 튼튼하다. 칼처럼 생겨서 살점만 발라 먹을 수 있는 여타 육식공룡의 이빨과 달리, 뼈째 아작아작 씹어 먹을 수 있도록 매우 두꺼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 턱 힘은 무게로 환산한다면 5t에 달한다.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발을 물렸다면 코끼리 한 마리가 발 위에 떨어진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성체가 된 티라노사우루스는 “박수도 못 치고 모기에 물린 턱도 긁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앞다리 대신 강력한 턱 힘만으로도 충분히 사냥을 했으리라 보인다.

다른 공룡 화석에서는 종종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물리거나 뜯어 먹힌 자국이 확인된다. 국립과천과학관에도 한 마리가 있다. 자연사관에 전시된 에드몬토사우루스다. 90%가 실제 화석인 이 에드몬토사우루스의 꼬리에는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물려 생긴 상처 자국이 남아 있다. 과학관에서 이번 전시를 담당하는 자연생명팀 김선자 연구관은 “8월에 특별전이 끝나면 자연사관 리모델링을 거쳐 스코티를 에드몬토사우루스 옆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약 6600만 년 전, 에베레스트산만 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공룡을 비롯해 지구상 생물의 75%가 멸종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소행성이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본 마지막 세대 공룡이다. 다시 깨어난 스코티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찬찬히 음미해볼 일이다.

후기 백악기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는 약 66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며 멸종했다. ⓒ시사IN 박미소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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