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이스라엘은 왜 싸우나? 중동 전문가가 답하다

김영화 기자 2024. 5. 2.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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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면서 중동 지역에 전운이 감돈다. 이슬람·중동 전문가인 박현도 교수는 “국제사회가 이란을 비판하는 만큼 이스라엘을 규탄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박현도 교수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중동의 평화는 없다”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중동이 벼랑 끝에 있다. 전 세계가 더는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4월14일(현지 시각)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국 영사관을 공습받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드론과 미사일 300여 개를 이용해 대규모 보복 공습을 감행한 다음 날이었다. 이스라엘은 드론과 미사일 99%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기로에 놓였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의 박현도 교수는 국내 이슬람·중동 전문가로 손꼽힌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이슬람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이란 테헤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란의 보복 공습을 두고 국제사회의 규탄이 커지는 가운데, 박 교수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이란으로서는 공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면 이란이 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왜 싸우나? 벼랑 끝의 중동에 평화 해법은 없을까? 중동 갈등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4월16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스라엘은 전면전을 피하되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이스라엘의 반격 여부와 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확전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일단 미국이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의 무기를 격추하는 이스라엘 방공망을 미국이 많이 지원했다. ‘우리가 도와줬으니 이란에 보복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탄도미사일 120기, 순항미사일 30기, 자폭 드론 170대 등 이스라엘과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던 극초음속 미사일도 여러 발 발사했는데 모두 표적에 명중했다고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보도했다. 공격 규모에 견주어 이스라엘의 피해가 미미하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쪽에 타격이 없지 않다고 본다.

동시에 상당히 공격을 절제했다. 군사시설만 겨냥한 점, 72시간 전에 인접국들에 예고한 점이 대표적이다. 이란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으면 아마 더 세게 밀어붙였을 것이다. 이번은 말 그대로 잘 통제된 공격이었다.

유럽연합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란의 공격이 중동 정세를 악화시켰다고 규탄하는데.

이란과 이스라엘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서로를 비공식적으로 공격하는 ‘그림자 전쟁’을 벌여왔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무장세력을 지원하고, 이스라엘은 이란의 유력 인사를 암살하거나 친이란 세력을 타격하는 식이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장성급 군인들이 사망해도 이란은 전략적 인내를 해왔다. 네타냐후 총리의 목적이 이란을 가자 전쟁에 끌어들여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만드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직접적 충돌을 피하려고 인내심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달랐나?

이란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4월1일 이스라엘은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다. 혁명수비대 군인을 포함해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사관은 실질적 영토로 봐야 한다. 호세인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도 4월14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유엔 헌장 제5조에 규정된 자위권 행사 차원”임을 밝히지 않았나. 한편으론 이란이 이스라엘을 대하는 셈법이 바뀌었다고 본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도발할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더 응징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4월1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구조대원들이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UPI

이스라엘은 왜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나?

이스라엘이 확전을 원했다는 설과, 이란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모르고 실책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사실 미국과 이란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4월1일 즈음 네타냐후 총리 퇴진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커지고 있었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반년 넘게 이어지는데 여전히 인질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며 이스라엘 전시 내각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란의 반격으로 네타냐후 정권으로서는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정치적 기회가 생겼다. 전시 내각에 대한 비판 여론은 쏙 들어가버렸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은 상황으로 이해하면 될까?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격은 분명 잘못이다. 그런데 더 잘못된 건 어떤 외교부나 언론도 비판 성명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의 나라 공관을 공격했으면 그것 자체로 국제법 위반이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르면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고, 어떤 침입이나 손해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폭격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성명조차 채택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면책특권이 있는 나라인가? 이란 정부도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충분히 문제 삼았다면 자신들이 이렇게까지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사회의 ‘정치적 위선’이 중동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의미인가?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수호한다는 국가들이 사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한국 외교부는 이란의 보복에 대해 두 줄 성명을 냈지만 이스라엘의 영사관 공습을 비판하는 성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이란’이냐고 하는데, 학자로서 내가 배운 정의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무슬림이 아니고 천주교 신자라고까지 밝혔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이란과 이스라엘은 어쩌다 적대관계가 되었나?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싹이 텄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원래 종교 문제가 아니었다. 아랍 민족주의와 유대 시온주의 간의 갈등이었다. 종교와 상관없이 아랍인들이라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갑작스럽게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된 것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부터다. 그 당시 이란이 혁명의 구호로 내세운 게 ‘억압받는 자의 해방’이었다. 이들은 세속주의에 억압받는 종교를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이슬람 정권을 세웠고, 그다음에 해방시켜야 할 당위의 국가가 팔레스타인이었다. 이란이 직접적으로 나서면 문제가 될 테니 프록시(대리인)를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만든 조직이 헤즈볼라다. 1982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레바논을 침공한 후였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 긴장이 고조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는 또 다시 잊힐 위기에 놓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팔레스타인 땅에 완전한 이스라엘을 복원하는 게 네타냐후 총리의 꿈이기 때문이다. 극우 정당과 연정 파트너를 맺으며 집권할 때부터 예견된 비극이었다. 다른 한편, 팔레스타인 문제는 더 이상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아랍 국가들의 첫 번째 어젠다가 되지 못한다. ‘아랍의 대의’라는 건 더 이상 없다. 경제는 경제, 전쟁은 전쟁 별개로 본다. 겉으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전쟁에 끼어들 생각도 없다.

이스라엘은 어쩌다 극우의 길을 걷게 되었나?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한 후부터다. 적어도 라빈 총리와 페레즈 대통령 때만 해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라빈 총리가 암살된 후부터 완전히 방향이 틀어져버렸다. 평화의 길을 가고자 했던 정권이 끝나고 그 자리를 극우 정권이 대체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사유화하며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고 있다.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중동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미국도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 이스라엘이 잘못해도 따끔하게 충고하지 않았다.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 대학 교수가 2006년 〈이스라엘 로비〉라는 책에서 이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이토록 꼬이게 되는 이유도 그와 연결되어 있다.

이란의 보복 공격 이후 국제정치적 파장을 어떻게 예상하나?

저강도의 주고받기는 계속되지 않을까. 대놓고 미사일을 쏘기보다는 서로를 음지에서 괴롭히는 ‘그림자 전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지금 아랍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이란도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키를 쥔 건 이스라엘이다.

중동의 평화를 위한 해법이 있을까?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중동 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1993년 오슬로협정 때처럼 공존의 묘를 찾았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설 만한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보면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왜 더 약자에게 고통을 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안타깝다. 물론 팔레스타인도 책임이 있겠지만, 평화는 힘 있는 자가 만드는 것이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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