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회유'에 수사도, 재판도 휘청…미국이었다면[양윤우의 법정블루스]

양윤우 기자 2024. 5. 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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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법정에는 애환이 있습니다. 삶의 고비, 혹은 시작에 선 이들의 '찐한'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2월27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검을 방문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도 사법방해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예전부터 있었고 이제 적극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습니다."

최근 한달 가까이 법조계와 정치권을 뒤흔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이른바 '술자리 회유 논란'을 두고 수도권 지역 법조계 한 인사는 1일 이렇게 말했다. 이 전 부지사가 내놓은 '술자리 회유'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과 별개로 이번 논란을 계기로 법정 허위진술을 사법방해죄로 제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특히 법정 허위진술로 사법제도를 흔드는 사례가 정치인이나 유력 기업인 등 힘이 있는 이들의 사건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고 말했다.

유력인들의 재판에서 허위진술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국내 사법체계에 사법방해죄가 없기 때문이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허위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되는 것과 달리 형사사건의 당사자인 피고인의 경우 법정에서 허위진술하거나 허위자료를 제출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검찰에서는 이 전 부지사의 '술자리 회유' 주장이 이런 제도의 빈틈을 노린 의도적인 허위 주장이라고 본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23일 창원지검을 방문했다가 취재진을 만나 "이 전 부지사가 1년 7개월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하지 않았던 주장을 재판이 종결되는 날 했다"고 언급한 게 검찰 내부의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이 전 부지사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이 예상됐던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도발했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유력인의 허위 주장이 정치나 여론 등 외부의 힘과 맞물리면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수사나 재판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6일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 100% 사실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술자리 회유 의혹'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의 발언 직후 민주당은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반'을 꾸리고 이 전 부지사 사건을 담당한 수원지검과 대검찰청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공세를 폈다.

서초동의 한 법조인은 "법원이 원칙적으로 법에 따라 판결하지만 사건이 정치 이슈화하거나 여론에 떠밀리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는 이런 점을 우려해 법정에서는 피고인이라도 허위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사법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사법방해죄를 중대범죄로 다룬다. 사법 절차에 출석하거나 사실을 진술하지 못하도록 방해·지연·설득할 의도로 타인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위협·폭력·부정한 방법 등을 통해 공적 절차상의 정당한 사법권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모두 사법방해죄로 보고 3년 이상 30년 미만의 징역 또는 1만달러 미만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원 범죄보다 사법 방해죄로 더 무겁게 처벌받는 경우도 많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것도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보다는 수사를 지연시키고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사법 방해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피고인의 법정 허위진술을 가중처벌하지 않는 것은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헌법 제12조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와 진술거부권 등 일정한 권리를 천명한다.

역사적으로는 군사 독재 시절 수사기관의 사건 조작 등 아픈 기억을 근절하겠다는 사회적 합의와도 맞물린다.

대법원도 이런 취지를 반영해 2001년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은 방어권에 기해 진술을 거부하거나 거짓 진술을 할 수 있으며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것을 인격적 비난 요소로 봐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 돼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사법방해죄 처벌 조항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법무부가 2002년 제출한 형법형사소송법 개정 초안에 참고인의 허위진술을 처벌하는 조항이 담겼다. 2010년에는 선진 형사사법제도 도입 일환으로 정부안도 제출됐다. 하지만 두차례 모두 특정진술을 강요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조계 한 인사는 "공판중심주의가 도입되면서 검찰에서 진술했더라도 재판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채택도 되지 않는데 이런 시대에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강요한다면 피고인들이 가만히 있겠냐"며 "검찰의 수사 방식과 법원의 재판 시스템이 과거와는 달라진 만큼 거짓진술로 수사나 재판을 흔들고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제재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밝혔다.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걸핏하면 불거졌던 문제가 이 전 부지사 사건에서 제대로 터진 것"이라며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치권과 법조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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