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90%는 中, 자폭 드론은 러로… 이란이 中·러·인도와 새판 짜고 있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5. 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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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지난 4월 13일 이란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소재한 영사관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대규모 탄도탄 및 드론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이 대부분 요격했지만 놓친 소수의 탄도미사일이 이스라엘 공군기지 활주로를 정확히 타격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세계는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8%를 차지하는 폭 39km의 호르무즈해협을 관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석유에 기반한 세계 경제에 언제라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가 이란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향하는 원유의 72%가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고 있는 만큼 이란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나라다.

사진은 이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유조선 모습./사진=신화 연합뉴스, 그래픽=김하경

이란은 에너지 지정학 측면에서 절묘한 위치에 놓여있다. 자체적으로는 세계 4위 수준의 석유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막대한 에너지 자원이 존재하는 카스피해의 접경국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양 세력의 간섭 없이 인도양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가 이란이다.

그래픽=김하경

팔레비 국왕 시절 세계에서 유일하게 F-14 전투기를 미국에서 공급받을 정도로 친미 국가였던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한순간에 미국과 적대적 관계로 변화했다. 미국은 1984년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이란 제재법(ISA)을 제정하여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미국의 제재는 2002년 이란의 핵 개발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더욱 거세졌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40년간 이어져 온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화해 무드가 잠시 조성하기도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최대의 압력을 가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은 0에 수렴했다. 이란은 고립무원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하지만 이란은 이런 상황에서도 헤즈볼라, 하마스 등의 세력을 조직화하면서 중동 전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제재를 우회한 원유 수출을 통한 재정적 뒷받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이란은 하루 평균 161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여 제재 본격화 이전인 2011년 하루 254만배럴 수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란은 유조선단의 위치를 송신하는 장치를 끄거나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조작하면서 해상운송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 이렇게 수출되는 원유는 국제 시세보다 5~10달러 저렴하게 판매되는데 90% 이상은 중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 도착한 이란산 원유는 말레이시아산 또는 UAE산으로 원산지가 바뀌고 소규모 독립 정유업체들이 대부분 구매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소규모 은행을 통해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달러 결제 제재 조치를 우회하고 있다. 이란은 이렇게 하루 평균 약 1억5000만달러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대금으로 받은 위안화로 중국의 상품 및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외환 보유고에 편입시키고 있다. 달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란과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만들고 싶은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이란 전체 무역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2021년 이란과 향후 25년 동안 적용되는 포괄적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이란은 중국의 신규 투자가 최대 4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은 그 대가로 할인된 가격으로 이란산 원유를 구매하고, 이란에 건설되는 프로젝트 보호를 명분으로 5000명의 보안 인력을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국은 이란 남부의 차바하르와 더불어 호르무즈해협에 있는 섬인 키시(Kish), 퀘즘(Qeshm)을 장기적으로 개발할 권리를 확보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세계 원유 수송로의 핵심 지역에 중국군이 주둔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중국은 2023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면서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중국과 이란의 협력은 탄탄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갈등 요소를 안고 있다. 2022년 중국은 이스라엘에 2억790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이란에는 1970만달러만을 투자해 이란을 실망시킨 바 있다. 또한 원유 판매 가격을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어 작년 12월 이란은 중국에 대한 원유 수출 중단 및 가격 인상을 통해 힘겨루기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한 이란으로서는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큰 기회가 되었다. 무기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는 이란에 손을 내밀었으며 이란은 장거리 자폭 드론 ‘샤헤드’를 대량으로 공급하였고, 그 대가로 러시아는 수호이-35 전투기 판매와 군사 기술 제공 등을 약속했다. 서방의 제재와 봉쇄에 직면한 러시아에 이란의 제재 우회 수단과 노하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은 최근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구축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국제남북운송회랑은 러시아에서 카스피해 연안국을 거쳐 이란을 통해 인도까지 연결되는 복합 운송망이다. 모스크바에서 뭄바이까지 이 루트를 이용할 경우 거리는 7700km로, 수에즈운하를 이용할 경우 1만6000km보다 훨씬 단축된다. 러시아로서는 페르시아만의 부동항에 접근할 수 있어 서방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새 루트를 확보할 수 있고, 이란은 인도·중앙아시아와 연결되는 본격적인 교역로를 확보할 수 있다. 미국 중심의 해양 세력에 대응하는 대륙 세력의 연합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석유 자원에 기반해 미국의 제재를 뚫고 생존해 온 이란은 이제 러시아, 중국 그리고 독자적인 세력 확대에 나서고 있는 인도를 결합시켜 서구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나서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이란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변심 이후… 이란 핵폭탄 사실상 완성

미국이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2월까지 순도 60%의 농축우라늄 5.5톤을 확보한 이란은 농축 능력을 기준으로 할 때 수일~수주일 사이에 핵폭탄을 완성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67년 미국의 연구용 원자로 제공으로 시작된 이란의 핵 개발은 1970년대 중반 프랑스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 1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본격화되었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중단되었다. 1990년대 초반 이란은 중국 및 파키스탄과 협력하며 비밀 핵 개발에 착수했으며, 1990년대 후반 2004년까지 핵무기 5개를 개발한다는 아마드 계획을 내부적으로 승인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눈을 피해 진행되던 이란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2002년 반정부 단체의 폭로로 드러났다.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국(미·영·프·중·러)과 독일이 이란에 우라늄 농축을 중단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협상안을 제시했고, 양측은 협상 끝에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다. 향후 15년 동안 농도 3.67% 이하로 300kg 이하의 우라늄만 농축하는 대가로 대부분의 제재가 해제되었다. 하지만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투명성 부족을 이유로 JCPOA 탈퇴를 선언하면서 고강도 제재가 시작되었고, 2020년 이란 의회가 우라늄 20% 농축을 선언하면서 이란의 핵 개발은 다시 본격화되었다. 2021년 미국과 이란은 핵 개발 동결과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합의에 거의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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