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주둥이 치워라…도끼 든 여인, 술집 6곳 초토화 시킨 이유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4. 5. 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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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독교 절제연맹' 회원들이 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표명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상단 검정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캐리 네이션. /Kansas State Historical Society

“부수자, 때려 부수자! 예수님의 사랑을 위해 때려 부수자!”

위아래로 검정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힘찬 구호와 함께 손도끼를 들고 술집으로 돌진합니다. 그는 벽돌과 방망이로 창문을 깨부쉈고 당구공과 큣대로 술집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손에 집히는 물건은 보이는 족족 전부 집어 던졌습니다. 검정 드레스의 여인은 동일 수법으로 하룻밤 사이 무려 6곳의 술집을 순회공연 하듯 순차적으로 격파해나갔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는 동안 술집은 태초의 형태로 돌아갔습니다.

미국 캔자스 위치타에 위치한 호텔 바. 캐리 네이션에 의해 기물이 파손돼 있는 모습. /Kansas State Historical Society

“저는 백 바(Back bar) 쪽으로 곧장 달려갔어요. 먼저 바에 있던 거울을 깨트렸고 술병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어요. 계산대를 내팽개친 다음에는 맥주 케그 냉장고의 수도꼭지를 부쉈고 맥주 통으로 연결돼 있던 고무호스를 모두 절단시켰어요.”

“슬롯머신을 집어 던지는 순간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이 오크통에 박히면서 온 사방으로 술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어요. 그때 저도 완전히 흠뻑 젖었어요.”

손도끼를 든 여인이 자서전에서 당시 상황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1900년 6월 오후. 미국 캔자스주 바버 카운티, 키오와(Kiowa) 마을에서 벌어진 소동의 장본인은 캐롤라인 아멜리아 네이션입니다. 줄여서 캐리 네이션. 캐리는 180cm 이르는 큰 키와 80킬로에 달하는 몸무게로 바텐더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술 마시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손도끼를 든 저승사자로 기억됐을 것입니다.

미국의 여성 활동가 캐리 네이션이 손도끼와 성경 책을 들고 있는 모습. /Kansas State Historical Society

캐리 네이션은 미국의 여성 활동가였습니다. 그는 주폭이 사회악이라 믿었고 술과 담배를 금기시했습니다. 캐리는 도끼와 성경을 들고 술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캐리는 여러 차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투옥 생활까지 이어가야 했습니다.

◇불안정했던 유년 시절

1846년에 태어난 캐리는 빚에 허덕이는 아버지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19살에 의사였던 찰스 글로이드와 결혼을 하지만 오래가진 못합니다. 글로이드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캐리가 임신 중에도 알코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글로이드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알코올성 폐렴으로 사망합니다. 이는 캐리가 생애 처음으로 알코올 중독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사건입니다.

과부가 된 캐리는 육아와 동시에 1872년, 워런트 버그 주립학교를 졸업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캐리는 학생들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발음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해고당합니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 쌓여가는 캐리는 당장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때마침 캐리는 19살 연상의 변호사이자 신문 편집자인 데이비드 네이션과 재혼을 하지만, 둘 사이의 성향 차이와 재정 문제는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캐리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호텔 관리인으로 취직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캐리는 점점 종교에 의존하게 됐고, 어느 날 술과 맞서 싸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고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캐리는 본격적으로 기독교 여성단체인 WCU(Woma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여성기독교 절제연맹)의 캔자스지부에도 참가하며 여성 인권과 주류 판매금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여성인권 운동가들은 금주에 열성적이었습니다. 1800년대는 미국으로 유입된 아일랜드와 독일 이민자들로 인해 양조업이 번성하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입니다. 당시 술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술집에서 생활비를 몽땅 탕진하고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였던 남성들이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죠.

◇도끼 들고 술집 사냥에 나선 캐리 네이션

캐리가 처음부터 도끼로 ‘술집 사냥’에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시작은 비교적 순했습니다. 그는 술집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출근하는 바텐더에게 “좋은 아침입니다. 남성들의 영혼 파괴자님!”이라고 인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술이 나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지긴 했지만, 금주법으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금주운동 결과에 불만족스러웠던 캐리는 더 이상 말이 안 통하겠다고 판단하고 도끼를 들고 술집들을 깨부수기 시작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방식을 ‘신의 계시’라고 정당화했으며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캐리의 다소 과한 모습에 질려버린 두 번째 남편은 결국 이혼을 결정합니다.

미국 캔자스에 있는 바를 부수고 있는 캐리 네이션과 지지자들 모습. /Kansas State Historical Society

기독교 금주운동 여성단체들은 캐리의 이런 모습을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캐리도 성원에 힘입어 만행의 농도는 점점 더 짙어졌습니다. 영화 ‘펄프 픽션’에 나올법한 짙은 흑백 의상은 캐리의 시그니처 복장이 됐고 성경과 도끼는 여러 남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종종 남자들이 물고 있던 담배를 입에서 꺼내 땅바닥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07년에는 백악관에서 와인을 허용한 대통령을 질책하기 위해 잔디밭 앞까지 갔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여성기독교 절제연맹' 회원들이 각자 옷에 작은 도끼를 부착하고 있는 모습. /Kansas State Historical Society

캐리는 1900년부터 10년 동안 기물 파손죄로 30여 차례 이상 경찰에 체포되고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 캐리는 풀려나는 족족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투옥을 거듭하면서 지지자들은 늘어났고, 캐리가 술집 사냥에 사용했던 손도끼의 레플리카도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덕분에 캐리는 꾸준한 순회 강연과 손도끼 기념품 수익금으로 자신의 벌금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열성적이었던 탓이었을까요. 캐리는 1911년 아칸소주, 유레카 스프링스에서 연설 도중 무대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게 9년 후, 알코올 규제를 담은 수정 헌법 제18조가 비준되었고 1920년 1월 16일, 미국 내 모든 술의 제조, 판매, 유통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금주법이 발효됐습니다.

사실 캐리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여러 자선 활동도 이어왔습니다. 다만 술을 혐오하는 극단적인 표현 방법 때문에 다른 모든 선행까지 묻혔던 것이죠. 현재 캐리가 잠들어있는 기념비에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가 연설 마지막에 했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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