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안락사, 철학적 논쟁 넘어 현실로 닥칠 실질적 문제… 선택권 줘야"

권준영 2024. 5. 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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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부검의)
'웰-다잉'은 유병기간 짧게하는 것
의료비 감당 안되는 상황 닥칠수도
사회적 합의없이는 문제 해결 안돼
"법의학자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디지털타임스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관 207호에서 유성호 법의학교실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디지털타임스 DB>
디지털타임스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관 207호에서 유성호 법의학교실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디지털타임스 DB>
디지털타임스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관 207호에서 유성호 법의학교실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디지털타임스 DB>

"안락사는 죽음에 대한 존엄성의 철학적 논쟁을 넘어서 현실로 닥칠 실질적인 문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된다. 안락사를 그냥 '존엄하게 죽으면 좋은 게 아닌가'라고 가볍게 접근하게 되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송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 중인 유성호(사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부검의)가 1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안락사와 관련된 책을 쓰고 있다는 유 교수는 "우리나라는 58년생 개띠로 대표되는 전후 복구세대의 베이비붐에 이어 1971~1973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 문제는 그때 태어난 분들이 점점 노인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반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20만명대다. 연금도 연금이지만, 의료비가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면 제 생각이 아니더라도, 국가적으로 불어나는 인구의 비대칭적인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의료비문제, 노인문제 등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안락사 반대 입장엔 생명 존중의 사상이 깔려 있다. 또 남용이나 악용의 가능성 이런 것들도 있다. 또 사회적으로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압박) 문제도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안락사에 대해 단순히 찬성 혹은 반대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깊숙하게 살펴보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어떤 유명 인물이 안락사에 대해 언급하는 게 기폭제는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는 문제 해결이 되진 않을 것"이라면서 "안락사는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이 문제를 다루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1주일에 2~8회 정도의 부검을 진행한다는 유 교수는 "저희가 하는 일이 시신을 다루다보니 많은 분들이 감정적으로 '좀 힘들지 않을까' 이렇게 많이들 물어보신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 않나. 부검은 언젠가 나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때의 나를 먼저 만나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며 "고인의 사망 원인을 국가적으로 알아야 되는 이유 때문에 검시를 하는 것도 있지만, 저는 본질적으로 돌아가신 분을 도와드리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부검에 임한다"고 남다른 사명감을 강조했다.

그는 "일을 함에 있어 지나친 공감, 혹은 슬픔에 빠지게 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기자들도 현장에서 비극적인 것을 취재할 때 거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때로는 비극적인 사건도 냉철하게 처리해야 되는 게 숙명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해 유 교수는 "죽음은 호모사피엔스에겐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이다.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않나"라면서 "끝이 없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1만년 정도라고 가정하면 9000년은 누워서 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늘도 출근을 하고, 학교를 가고,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삶이란 광대한 우주라는 공간에서 찰나의 순간에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선 "자신의 신체 건강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감 없이 마지막 순간을 유병기간을 짧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따라서 '웰-다잉'은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한다기 보다는, 의료 서비스를 본인이 정확히 알고 이용하는 걸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암에 걸리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확률이 낮더라도 끝까지 치료를 하는 문화가 있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님을 끝까지 치료하는 게 효(孝)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치료라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때가 있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떠나갈 채비를 하지 못하고, 끝까지 고통 속에서 헤매다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치료라는 게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금만 아프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누구나 이루기는 어렵다"면서 "본인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선택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자 본인이 치료보다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면서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자체가 사실상 어떤 준비되지 않은 죽음, 느닷없는 죽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웰-다잉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고, '이 정도면 괜찮았던 삶이었다'라는 걸 반추하고 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후배 의사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유 교수는 "후배들은 아마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하기 위해 이 직업을 선택했을 거라고 판단한다"며 "그 마음 변치 말고 환자들 삶의 동반자, 조연 혹은 엑스트라로서 맡은 바 책무를 잘 수행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저는 강연에서 젊은 후배들에게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왜냐하면 뒤를 돌아봐서 변경될 게 없기 때문"이라며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우리는 과거로 못 간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면, 인생이란 오르막길에서 넘어지기 십상"이라며 "가뜩이나 힘든 삶인데, 뒤를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앞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많은 분들이 법의학에 대해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면, 법의학 분야에서도 제2, 제3의 약간 특이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면서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가끔은 특이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의 의미는 여러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꼭 환자를 보는 의사만 있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분을 보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특이한 분들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런 분들을 색안경 끼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의사 중 소수인 법의학자들을 지속적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했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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