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지키는 것들

한겨레21 2024. 5. 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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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부모에게 한 말치고는 잔인한 것이었다.

어쩌면 주현님의 삶을 위태롭게 할 가장 큰 위협일지 모를 주장들이었다.

지역이 사라지면 주현님의 삶은 그동안 노력이 무색하게 증발해버릴 것 같다.

어떤 바람이 우선인지 혹은 우월한지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주현님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이로서 활동지원사님이 잘 돌봐주시는 지금이 위태롭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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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 사람, 아직 안 죽었어요?”

자식이 부모에게 한 말치고는 잔인한 것이었다. 주현(가명)님은 정신질환으로 오랜 기간 시설과 병원에서 지내다 퇴원 이후 홀로 살고 계셨다.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를 통해 의뢰받고 찾아뵌 지 3년이 넘었다. 주현님 곁을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돌보고 있다. 인근에 자식이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언제 돌아가시나 생각하며 지내는 눈치로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찾아가는 의사로서 운동하시도록 격려하고 약을 드리며 꾸준히 찾아뵈었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도 크게 나빠지지 않음에 감사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아들이 던진 잔인한 질문

그런데 하필 명절 연휴를 앞두고 혈압이 높고 전신 상태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공휴일이란 장애인에게 돌봄노동자가 오지 않는 외로운 시간이다. 활동지원사님이 나에게 급히 도움을 청해 연휴를 며칠 앞두고 매일 찾아가서 상태를 살폈다. 검사도 하고 약도 바꿔가며 상태를 지켜봤다. 하지만 상태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연휴에 혼자 지내시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민센터에도 상황을 알렸다. 자식에게도 연락해서 최소한이라도 돌봐주길 바랐지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직 죽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자식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고 금전 관리 등 최소한의 생사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니 무작정 자식을 원망할 수도 없다.

활동지원사님과 둘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했다. 어르신이 지내는 집은 반지하이고 좁은 편이지만 화장실이 꽤 멀고 높은 턱이 있어 배변을 참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오랫동안 참는 일이 익숙해졌다. 다른 방법이 없어 덩치가 제법 있는 어르신을 뒤에서 안고 화장실로 모시고 갔다. 앉아서 대변을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대변 본 걸 확인하고 샤워기로 처리를 돕고 방으로 모시고 왔다. 다행히 어르신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식이 와서 119에 연락하겠지 하고 억지로 믿으며 활동지원사님과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섰다.

연휴가 끝나고 어르신을 다시 찾았을 때 다행히 상태가 호전됐다. 혹시 의식을 잃고 쓰러지지 않을지, 돌아가시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정말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연휴를 마치고 우리는 예전처럼 그를 돌봤다. 주현님은 앞으로도 잘 지내실 수 있을까?

사실 이 집을 드나들며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붙은 대자보들이었다. 어쩌면 주현님의 삶을 위태롭게 할 가장 큰 위협일지 모를 주장들이었다. 동네는 오래된 주택 밀집 지역으로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이 바라는 개발 방식을 주장하는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주현님을 둘러싼 질병과 낙인, 가족의 무관심, 주거의 불안정 등으로 인해 결코 그의 삶을 환자로서만 바라볼 수 없다. 어르신 댁을 다니며 눈으로 확인한 이 분쟁은 건강을 돌보는 노력과 별개로 한 사람의 삶에 큰 변화를 줄 거란 생각이 들어 힘이 빠진다. 지역이 사라지면 주현님의 삶은 그동안 노력이 무색하게 증발해버릴 것 같다. 집주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주현님의 삶이 이곳에서 좀더 지속하길 바란다.

개발 수익보다 주민의 건강

어떤 사람의 건강 위기는 누군가의 경제적 이득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집값이 적게 드는 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된 거주지를 개발해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바람이 우선인지 혹은 우월한지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주현님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이로서 활동지원사님이 잘 돌봐주시는 지금이 위태롭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나 역시 더 노력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았냐는 아들의 물음에 “이 동네 아직 개발 안 됐어요”라고 대답하며 어르신 댁을 찾아가려 한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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