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 같은 허술함은 유아인 탓인가 제작진 책임인가('종말의 바보')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5. 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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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인데 가족드라마 같다? ‘종말의 바보’에 남는 아쉬움

[엔터미디어=정덕현] "아직 193, 아니 192일 남았잖아." 소민(김보민)은 아무도 없는 미군 기지에 세워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는 자신에게 하율(김도혜)이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냐고 묻자 그렇게 말한다. 소행성 충돌에 의한 예정된 종말에 어느새 익숙해진 아이들은 어딘가 조숙해보인다. 하율이 모든 걸 포기했거나 달관한 듯한 냉소적 태도를 보인다면, 소민은 그래도 남은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율이 그런 소민에게 툭 이런 말을 던진다. "그래. 그런 열정적인 바보도 있겠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가 보여주려는 건 이 짧은 대사에 담겨 있는 것처럼, 종말이라는 세상의 끝장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예정된 종말 앞에 인간군상들은 저마다 다른 선택들을 보인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저 살 궁리만 하고, 정부의 고위 지도층들은 국민들을 버리고 도망친다. 남아 있는 서민들은 치안부재의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그 와중에도 바보처럼 일상의 자잘한 행복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웅천이라는 가상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종말의 바보>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려간다. 친구들이지만 이제 저마다의 위치에 서 있는 네 명은 교사인 진세경(안은진), 그의 약혼자이자 연구원인 하윤상(유아인), 그 동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신부 우성재(전성우) 그리고 부재한 치안을 대리하는 군인 강인아(김윤혜)다. 인물의 직업인 교사, 연구원, 신부, 군인으로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종말에 즈음해 어떤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가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서사다.

교사인 세경은 종말 앞에서도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에 몰두하고, 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지내던 윤상은 그곳에서 살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세경을 찾아 굳이 종말을 앞둔 이곳을 찾아온다. 신부인 성재는 자신 역시 믿었던 주임신부님의 배신으로 인간적인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본분대로 사제의 삶을 지키려 하고 군인인 강인아는 치안 부재의 상황 속에서 지켜야할 본분을 넘어서는 정의의 문제에 뛰어든다. 그래서 이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종말의 바보>는 그 직업적 성격상 휴먼드라마와 멜로드라마, 스릴러 액션에 종교적 색채 같은 다양한 결들이 겹쳐진다.

흔히들 종말을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혼돈과 충격적인 극적 사건들을 기대하게 만든다면, <종말의 바보>는 이러한 기대를 수시로 배반하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아이들이 납치되어 매매되는 현실은 액션 스릴러로서의 긴박감을 그려내지만, 드라마는 그 흐름으로 흘러가기보다는 저마다 종말의 대혼돈 속에서 종말이 오기도 전에 심지어 아이를 잃는 상처까지 안고 살아가는 웅천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들을 계속 보여준다.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가져왔지만 가족드라마를 보는 것 같달까.

물론 여기에는 <종말의 바보>가 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결국 언젠가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그래서 종말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세워두고 그 예정된 삶 앞에서도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바보 같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선택이라는 걸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종말의 바보>는 중의적이다. 종말(죽음)을 앞두고도 끝까지 돈에 집착하고 좀더 살 궁리를 위해 누군가를 배반하는 바보들이 있다는 뜻과 더불어, 그럼에도 바보처럼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뜻이 더해져 있다.

문제는 디스토피아라는 세계관을 가져와 시청자들이 기대하게 만든 것들과는 너무나 다른 정반대의 일상들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기대를 배반하는 흐름이 주는 지루함이 생겼다는 점이다. 물론 일상을 담는다고 해서 지루해지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종말의 바보>가 그리는 인간군상들의 서사들은 생각만큼 강렬한 감정들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좀더 촘촘한 인물들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드라마의 힘이 생길 텐데, 그렇지 못하게 되자 어딘가 허술한 디스토피아 설정의 빈틈들이 자꾸만 눈에 띤다.

안은진과 김윤혜나 백지원, 김여진 같은 배우들의 호연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유아인 리스크 때문에 편집되면서 생겨난 서사의 허점들 때문인지 도저히 김진민 감독과 정성주 작가가 함께 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성도가 아쉬움을 남긴다. 종말 앞에 진짜 바보는 누구인가를 묻는 흥미로운 기획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획을 설득력 있게 채워주지 못한 완성도의 부재가 갑자기 터진 배우 리스크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작품의 한계 때문이지 궁금하다. 어느 쪽이든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큰 작품으로 남게 됐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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