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원전’ 정부에 정책 얼마나 발맞출까…“원전 최대 4기 늘 수도”
11차 전력기본계획 발표에 쏠리는 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조정 여부 주목해야”
A. ‘신규 원자력발전소 최소 2기+ 소형모듈원전(SMR).’
에너지 전문가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빠르면 다음 달 하순쯤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초안)에 최소 신규 원전 2기 이상의 건설 계획이 담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원전 생태계 복원’을 일관되게 강조해온 만큼, 중장기 국가 에너지 계획에 정권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새 원전 건설 계획이 전기본에 담긴다면 정치권과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와 송·변전 설비 건설 방향 등을 담은 행정 계획입니다. 미래 전기 수요에 맞춰 전력을 생산·공급하기 위해 2002년부터 2년 단위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런 국가 에너지 계획이 이념화·정치화되면서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9차 전기본에서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도 추가로 건설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세계적으로 고조된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이른바 ‘탈원전 정책’을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이 계획을 전면 뒤집어 버렸습니다. 2022년 10차 전기본에서 노후 원전 수명을 연장하고,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하며 이른바 ‘탈-탈원전’,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죠.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급격한 에너지 정책 변화의 이유를 ‘원자력계의 정치세력화’에서 찾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당시 원전 업계는 하루 아침에 밥그릇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비롯해 원자력 학계와 학생 800여명은 이에 ‘원전 생태계 부활’을 목표로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에 나섰습니다.
박종훈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으로 위기를 겪던 원자력업계가 ‘탈원전 반대 100만 서명 운동’ 등으로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뒤 원전 부흥 정책이 다시 본격화했다”며 “이로 인해 원전 사양화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원자력계는 11차 전기본에 최소 2기 이상의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전(대형 원전을 100분1 크기로 축소해 일체형으로 조립한 소형 원자로) 건설 계획이 담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기본 작성을 위한 전문가 집단(워킹그룹)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신규 원전은 최소 2기에서 최대 4기를 추가하는 안이 주로 논의됐다”며 “한수원 주도로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전 건설안도 (11차 전기본에) 반영될 수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정부는 현재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은 소형모듈원전을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핵심산업으로 키워 2030년 전까지 조기 상용화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정부가 원전 확대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나날이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이 전력 수요 예측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비과학적으로 산출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9차 전기본에선 ‘야간 완속 충전의 보편화로 전기차가 늘어도 전력 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이번 정부가 내놓은 10차 전기본에선 ‘전기차 확대가 전력 수요를 증가시킨다’며 정반대의 예측 결과를 내놨습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의지를 반영하다 보니 발전원별 상황과 계통 여건 등 현실적인 고려 없이 원전 같은 특정 발전원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11차 전기본에서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과 관련해, 정부가 어떤 수요 예측치를 내놓을 지 주목됩니다.
원전을 확대하는 과정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어떻게 조정될지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출력 제한이 어려운 원전을 주력 발전원으로 활용하는 탓에,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9, 10차 전기본을 비교하면 2030년에 원전 발전 비중이 23.9%에서 32.4%로 늘어나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30.2%에서 21.6%로 낮아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다 떠나서 중장기 국가 에너지 정책인 전기본이 책임성 있게 수립됐는지 검증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현재 전기본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했는지를 알 수 없어 이후 전력 수요나 발전 설비 공급 예측치가 잘못됐다는 게 드러나도 책임지는 주체를 특정할 수 없다”며 “전기본이 정치권 입김에 좌우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기본 수립 절차를 투명화하고 다양한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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