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리고 싶었지만 공공의 적 됐다”…눈물 삼킨 전공의들

강윤서 기자 2024. 5. 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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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대 교수들, 긴급 포럼 열고 의료개혁 논의
안철수 “증원 1년 유예해도 큰 차이 無…타협안 고려해야”
의협 “정부가 먼저 사과해야…의사들도 자기반성 필요”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4월30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긴급 심포지엄을 열고 의료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까지 사직 행렬에 동참하며 의료공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긴급 논의의 장을 연 의사들은 정부의 정책 설계와 일방적 추진 방식에 여전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진정한 의료개혁'을 위해 의료계가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때라는 진단도 나왔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전날 서울대병원 제일제당홀에서 긴급 심포지엄을 열고 의료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집단 사직 이후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하던 전공의 일부도 심포지엄에 참석해 정부에 내실 있는 의료개혁을 당부했다. 전공의들은 '밥그릇 싸움'을 위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는 한국 의료 환경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전공의는 공공의 적이 됐다"며 "몸을 기댈 곳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전공의들은 이번 사태에서 젊은 전문가, 수련생,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어 "이제라도 정부가 진정한 의료개혁을 위해서 전공의가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환자 곁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며 "기피과가 있다면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서 모든 전공의가 소신껏 지원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의료 정책에 대해 논의할 때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정부도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나서 달라"면서 "수십 년 동안 무너진 의·정 간 신뢰를 회복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발언 과정에서 눈시울을 붉힌 그는 발표를 마친 후 자리로 돌아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또 다른 전공의도 근무환경의 개선을 촉구했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한 전공의는 "정부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공의) 대표 한 두 명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전공의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위 기피과로 불리는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전공의들은 밥그릇 싸움을 위해 사직한 것이 아니"라면서 "사람 한 명을 더 살리고 싶다고 외쳤던 친구들"이라고 말하면서 목이 메였다. 

4월30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의료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이 포럼에는 집단 사직에 나선 전공의와 지난 달 30일 진료를 중단한 일부 서울대의대 교수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의료개혁 추진 방향과 현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해결책 등을 논의했다.

안 의원은 의대 정원 증원을 1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의사와 의대생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오시고 정부는 2000명을 고집을 그만두고 (증원을) 1년 유예하라"고 의·정 양측에 요구했다. 

'1년 유예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에 대해선 "(영수회담 내용을 비추어 볼 때) 1년 유예 주장이 받아들여지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대략 올해 가을부터는 지방의료원이 도산하는 일이 생기면서 (그제야) 어떤 중재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게 현실적 예측"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놓고 보면 1년 유예한다고 해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따라서 그 정도 선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의료개혁 방침에 반대하며 사직한 전공의들이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에 대한 고소를 예고하는 등 의정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4월15일 서울 소재 대학 병원에서 한 의사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달 29일 열린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이 같은 인식을 보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의·정 간 대화의 장이 마련될 가능성도 언급됐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특위)든 협의체든 의료계도 소통에 참여할 의사가 분명히 있다. 다만, (정부가 마련한) 현재 특위의 형태에선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만든 협상 테이블은 의사들이 전문가로서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며 "특위를 구성하는 의사 수를 늘리는 등 전문가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더 이상 불필요한 자극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의 자성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의료대란을 통해 의사와 국민 간 소통에도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면서 "그간 의사들은 환자를 만나면서 원활한 소통이 이뤄졌다고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 대해 의사들의 자기반성이 너무 부족했다"며 "특위나 위원회 등의 구조가 개선되면 (의사도) 참여해서 국민의 의견을 듣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윤철 서울대의대 교수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주문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먼저 진정성 있는 첫 만남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구체성이 떨어지는 필수의료 패키지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토대로 한 '원대한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를 향해서는 "의사들도 정부가 내놓은 안건을 조목조목 반박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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