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메이저리그 투수가 없다? [이창섭의 MLB와이드]

한겨레 2024. 5. 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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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다승(20승), 탈삼진(281개) 1위였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투수 스펜서 스트라이더. 그는 팔꿈치 수술로 올 시즌 뛸 수 없다. AFP 연합뉴스

메이저리그 개막 한 달이 지나갔다. 여전히 남은 일정이 더 많지만, 시즌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시기다. 첫 한 달 동안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단연 투수들의 부상이었다. 마치 역병이 도는 것처럼 투수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리그를 평정했던 투수들이 부상으로 낙마했다. 게릿 콜(양키스)과 셰인 비버(클리블랜드), 샌디 알칸타라(마이애미)는 사이영상을 수상한 투수들이다. 올해 개막전 선발로 나온 스펜서 스트라이더(애틀랜타)와 프램버 발데스(휴스턴), 조사이아 그레이(워싱턴)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유리 페레스(마이애미)와 바비 밀러(다저스) 같은 신예들도 부상에 신음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메이저리그 투수가 없다”는 역설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사무국와 선수노조는 이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선수측은 작년부터 시행된 ‘피치 클록’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코빈 번스(볼티모어)는 “순간적으로 모든 힘을 써야 하는 스포츠에서, 호흡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선수노조는 이례적으로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사무국은 즉각 반박했다. 선수노조가 제기한 피치 클록이 투수들의 부상을 유발한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무국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축적된 ‘구속 증가’와 ‘변화구 의존’을 연관성 있게 바라봤다.

사무국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구속 혁명이 일어났다. 투구 추적이 가능해진 2008년,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이하 포심) 평균 구속은 시속 147.9㎞였다. 이후 이 구속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2016년 처음으로 시속 150㎞를 넘기더니, 지난 시즌에는 시속 151.6㎞까지 빨라졌다. 그러면서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경고가 나왔다. 명예의 전당 투수이자, 메이저리그 해설가로 활약 중인 존 스몰츠는 “만약 내가 지금 선수로 뛰었다면 난 2년 안에 사라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강속구 투수들의 부상 비중은 상당히 높다. 현재 부상으로 이탈한 대부분의 투수들이 강속구를 던졌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지난 5년간 포심 평균 구속 상위 21명 중 18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전설적인 투수 그레그 매덕스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온통 구속에만 집착하고 있다. 정작 더 중요한 제구와 완급 조절, 어떻게 공을 던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뒷전이다”라고 지적했다.

변화구 비중이 늘어난 것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메이저리그는 더 위력적인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공의 회전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최신 기술에 해박한 팀들은 이미 회전수에 특화된 투수들을 수집하고, 또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회전수가 많은 변화구는 그만큼 팔꿈치와 어깨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스포츠 의학계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이 요구되는 투수들이 오면 “스위퍼를 던지는지부터 살펴본다”고 증언했을까.

물론, 피치 클록도 용의 선상에서 배제할 수 없다. 게릿 콜은 “시행 기간이 짧다고 해서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은 근시안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제이미슨 타이욘도 “투수마다 성향이 다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수들의 부상이 이렇게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몇몇 특정 이유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최대한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 유력 매체 ‘디 애슬레틱’은 “메이저리그는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순히 메이저리그 안에서만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좋은 투수의 인식과 투수를 키우는 방식 등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사무국과 선수노조,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나아가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때가 아니다.

투수가 소모품이 되고 있다는 세태에 경종을 울렸다. 리그의 질적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모두가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pbbl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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