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원화 가치, 1400원대로 갈까?

이종태 기자 2024. 5.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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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15일, 미국 연준은 6월 금리인하를 포기할 만한 경제 데이터를 접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통화가 폭락했다.
4월16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환전소의 환율 안내판. 이날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한국 원’의 가치가 폭락했다. 원화 가치는 4월16일 오전, 심리적 저지선인 1달러당 1400원까지 하락했다가 1392원으로 마감되었다(1300원에 사던 1달러를 1400원을 줘야 산다면,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원화 가치가 1400원대까지 내려간 것은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만이다. 원화는 올해 들어 4월16일까지 달러화에 대해 7.5%나 떨어졌다. 4월 들어 하락 폭은 2.7%다.

같은 날, 코스피 지수는 2.28% 떨어졌다. 장기 차입비용인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3.614%로 5.3bp(0.053%포인트) 올랐다. 이날 외국인들은 2721억원 규모의 한국 주식을 순매도했다.

원화 가치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4월16일)의 정리에 따르면, 상당수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 폭락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4월16일, 4년 만에 가장 낮은 1달러당 16.2루피아로 하락했다. 같은 날, 인도 루피화는 사상 최저치인 83.5루피로 떨어졌다.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26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타이완 달러와 필리핀 페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에서 플러스 영역(0~0.1%)으로 올린 일본 엔화마저 1990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1달러당 154.6엔으로 떨어졌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당분간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게 확실시된다. 자금은 금리가 ‘높을’ 나라로 향한다. 달러에 대한 수요(와 그 가치)가 높아졌는데 이는 ‘다른 통화들의 달러 대비 가치가 하락한다’는 뜻이다.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평정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오는 6월부터 현재 5.25~5.5%인 기준금리 인하에 들어갈 것으로 보였다. 연준에 필요한 것은 ‘경기 하락 국면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도 물가는 오르지 않을 것’에 대한 증거뿐이었다. 그러나 4월 들어 발표된 ‘3월 경제지표’들은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미국 경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일자리가 너무 많이 늘어나고 인플레율은 예측치보다 높았다. ‘인플레가 잡힌 게 맞느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결정타는 4월15일 발표한 ‘3월 소매(retail) 판매’였는데, 전년도와 전월 대비 각각 4.0%, 0.7% 증가한 796억 달러로 나타났다. 연준은 6월 금리인하의 명분을 완전히 상실했다.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면 수익률 높은 다른 나라로 돈을 옮겼을 투자자들은 ‘미국 탈출’의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으로 유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4월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4월13~14일 이스라엘 본토를 드론과 미사일 300여 기로 공격했다. 이스라엘이 대다수의 발사체를 요격해서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만히 있을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보복하겠다고 선언했다. 반격 시점과 방법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 전면전은 주변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까지 끌어들이는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이란은 세계 원유 교역량의 3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경제를 타격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계정세가 불안하거나 그럴 조짐이 보이면 글로벌 자금은 미국 달러화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불투명한 상황으로부터 ‘나’의 자산을 그나마 가장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패권국가 미국 달러 기반의 금융상품을 사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 너무나 당연히 원화 가치는 떨어지는데, 원화의 하락 폭을 더 크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 한국은 석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단히 취약한 국가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너무 높다. 한국 경제가 유가 상승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원화를 팔고 다른 통화(특히 달러)를 매입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셋째, 미국 연준은 조기 금리인하가 여의치 않게 되었지만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오는 여름쯤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 ‘하나증권 리서치’(4월16일)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영국 등은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진정되고 있는 데다 생산성 약화, 내수경기 부진 등의 이유로 기준금리 인하가 절실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4월 통화정책회의에서 6월 금리인하를 시사했고, 영국중앙은행(BOE)에서도 금리인하 소수 의견이 나왔다.”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는데 다른 선진국들의 금리가 내려가면, 양측 간 금리 차이가 더욱 벌어지게 된다. 자금이 달러 쪽으로 흘러가고 달러 강세는 더욱 격화될 터이다.

4월12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북부 지역으로 날아오는 로켓을 아이언돔이 요격하고 있다. ⓒREUTERS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달렸다?

한국은행 역시 미국 연준과 별도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직전까지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4월12일 금융통화위원회(기준금리 3.5% 유지) 직후 기자들에게 “하반기 금리인하도 어려울 수 있다”라면서도 “작년보다 국내 요인을 갖고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설사 미국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은 상태라도 한국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인하를 선제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기관인 BNP파리바는 4월14일 낸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오는 7월부터 연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넷째, 한국 주요 대기업들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4월에 집중되어 있는 사정도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배당금을 본국에 송금하려면 달러화로 바꿔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와 가치가 상승한다.

금융기관들은 대체로 연준의 6월 금리인하는 어려울 것으로 봤지만 원-달러 환율의 향방에 대해선 조금씩 어긋나는 의견을 내놓았다. 신한투자 리포트(4월15일)는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오버슈팅(일시적 폭등)에 1400원을 상회할 수 있겠으나”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는다면 2분기 중 원·달러 고점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하나증권 리서치(4월16일)는 미국 달러 강세가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ECB, BOE 등 주요국의 금리인하가 독립적으로 시행되는 가운데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는 3분기쯤으로 밀리고 금리인하 횟수가 2회로 제한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연말까지 우상향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단기적으로 1400원대 진입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하이투자증권 보고서(4월15일)는 “이번 중동 사태가 유가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달러 추가 강세는 물론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유가 추가 상승, 즉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 수준을 넘어선다면 원·달러 환율 역시 1400원대 진입은 불가피해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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