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신약 개발처럼’ 진화하는 한약 조제...국내 최대 한약조제시설 가보니

유병훈 기자 2024. 5.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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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기도 성남 ‘자생메디바이오센터’
7000평 정제수부터 배송까지 원스톱 시설
hGMP에 약침원외탕전실 약침 인증까지 ‘국내 최초’
이중삼중 검사 통한 안전·유효 한약 조제
오는 29일 한의학 첩약 GMP(제조품질관리기준) 도입과 관련 지난해 문을 연 국내 최대 한약 통합조제시설 '자생메디바이오센터'를 찾았다. 23일 경기 성남시 자생메디바이오센터에서 한약제조 과정과 연구시설 등을 둘러봤다. 사진은 유해물질 시험, 성분 확인 시험 등을 검증하는 3층 한약재 생산 및 품질검사 시설. /남강호 기자

지난 23일 찾은 경기 성남시의 자생메디바이오센터는 첩약(한약재를 섞어 만든 치료용 탕약)과 약침(한의학식 주사) 조제 시설이라기보다는 신약개발 연구소에 가까운 인상을 줬다.

경기도 성남과 남양주에 있던 기존 한약 조제 시설을 한데 모아 2만2792㎡(약 7000평) 면적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다시 지은 것이다. 지난해 10월 생산을 시작한 센터에선 하루 최대 1500명분의 한약이 조제되고 800t의 한약재가 가공된다. 시설뿐 아니라 생산량에서도 국내 최대 규모라고 센터 관계자는 설명했다.

생산 규모가 주는 위압감도 크지만 ‘집념’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치밀한 위생·관리 시스템도 깊은 인상을 줬다. 올해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견학도 이뤄지고 있는데 설계 당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매 층마다 통유리로 거의 모든 공정 과정을 지켜보도록 했다. 유리 밖에서 지켜본 공정은 하루에만 수백 명분의 한약을 조제한다기에는 믿기지 않게 청결하고 조용했다. 신약 개발 연구소 같은 느낌이 든 이유다.

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선 가장 큰 한약 생산시설이고, 중의학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약 하면 떠오르는 한약재 관리와 탕전(湯煎·한약재를 끓이고 달임)은 사실 식품 공장에 가까웠다”며 “자생메디바이오센터는 한의학의 과학화·첨단화·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한약재와 한약 조제 과정을 꼼꼼히 관리해 신뢰성이 보장된 한약을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한의학 첩약 건강보험 2단계 시범사업도입과 관련 지난해 문을 연 국내 최대 한약 통합조제시설 '자생메디바이오센터'를 찾았다. 23일 경기 성남시 자생메디바이오센터에서 한약조제 과정과 연구시설 등을 둘러봤다. 사진은 유해물질 시험, 성분 확인 시험 등을 검증하는 3층 한약재 생산 및 품질검사 시설. /남강호 기자

자생메디바이오센터의 자신감은 각종 인증으로도 증명됐다. 센터는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hGMP(한약재 조제 및 품질관리 기준) 실사와 인증을 획득했고 지난 2018년부터 5년 연속 hGMP 우수업체로 선정됐다.

hGMP 외에도 보건복지부 약침원외탕전실 일반 한약과 약침 모두 원외탕전실 인증을 받은 것은 지금까지 자생메디오바이오센터가 유일하다. 관계자는 “센터를 통해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찔 수 있다, 간에 안 좋다.’ 등 한약에 대한 잘못된 인식까지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자생메디바이오센터의 이 같은 노력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한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한의원·한방병원·종합병원에서 알레르기 비염이나 요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한약을 처방받으면 비용의 30~50%만 부담하면 된다. 기존의 생리통, 뇌혈관질환 후유증, 안면신경마비에서 추가됐다.

그런데 첩약에 건보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첩약이 시설·원료 한약·조제 등 9개 관리 영역과 최대 53개 필수항목 운영 기준이 충족된 탕전실에서만 조제돼야 한다. 한약재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hGMP 기준에 적합한 규격품들로 사용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기준이지만 센터 관계자는 “센터는 정부 인증 기준보다 더 높은 자체 기준으로 첩약과 약침을 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한의학 첩약 건강보험 확대 시범사업 도입과 관련 지난해 문을 연 국내 최대 한약 통합조제시설 '자생메디바이오센터'를 찾았다. 23일 경기 성남시 자생메디바이오센터에서 한약조제 과정과 연구시설 등을 둘러봤다. 사진은 유해물질 시험, 성분 확인 시험 등을 검증하는 3층 한약재 생산 및 품질검사 시설. /남강호 기자

◇ 더 순도 높은 물, 더 안전한 한약재 가공

센터의 지하 1층은 첩약과 약침 조제에 쓰이는 물을 24시간 정제하는 시설로 가득 찼다. 탕전을 위한 물은 지하의 수처리시설에서 3단계 필터를 거쳐 정수된다. 물리적 정제를 위한 역삼투압 장치, 물속의 이온까지 제거하는 전기 탈이온 방식(EDI)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정제된 물은 24시간 이내에 모두 소비한다. 몸속에 주입될 주사 용수는 정제수를 반복적으로 증류해 순도를 더욱 높인다. 센터 관계자는 “수질은 제약사의 수질 관리 기준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한다”고 말했다.

3층의 한약재 분석실은 한약재의 유효성과 유해성을 검사하기 위한 실험·전처리실이다. 유해 성분을 효과적으로 없애고 유효성분은 최대화하는 연구·특허를 1년에 5개 정도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전처리된 한약재들은 20여 종의 분석기기를 거쳐 농약이나 중금속이 있는지 집중 분석된다. 분석기 중에는 극미세량의 수은을 검출할 수 있는 장비도 있는데, 웬만한 대형 제약사의 생산라인도 구비하지 못한 고가의 장비라 다른 회사로부터 분석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분석 결과는 인위적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해 관리한다.

분석된 한약재는 본격적인 가공에 들어간다. 센터는 총 460가지 한약재의 가공을 신고·허가받았는데, 통상 한 가공라인에서는 하루에 단 1가지 한약재만 가공한다. 여러 한약재를 처리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교차오염 가능성 때문이다. 가공 후에도 혹시 모를 이물질을 제거하고, 최소 3명의 전문 검수인이 육안으로 최종 선별한다.

선별 후에는 자동 포장 작업에 들어가는데, 한약재를 담기 위한 자동포장기 개발에만 2년을 투자했다고 한다. 자동포장기에 담긴 후에는 금속탐지기로 향한다. 금속탐지기는 눈으로 보기 힘든 중금속까지 판별하는데, 여기서 이상이 발견되면 그 즉시 포장 용기째 폐기한다.

지난달 29일 한의학 건강보험 시범사업 확대 적용과 관련 지난해 문을 연 국내 최대 한약 통합조제시설 '자생메디바이오센터'를 찾았다. 23일 경기 성남시 자생메디바이오센터에서 한약조제 과정과 연구시설 등을 둘러봤다. 사진은 전문 한약사가 GMP인증을 통과한 한약재를 사용해 조제, 한약을 생산하는 탕전실 등이 있는 2층 약침 및 한약 조제 시설./남강호 기자

◇ 안전한 한약·약침 위해 또 멸균 또 확인

2층에서는 한약재를 한약으로 조제한다. 자생한방병원의 한의사들이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면, 처방전이 센터로 즉시 전송돼 전문 한약사 10명이 탕전실에서 조제를 시작한다. 탕약(湯藥·한약을 달임)을 위한 탕전기는 모두 72대가 있어 전국 21곳의 자생한방병원 중 수도권 12개 병원의 입원·외래 환자용 한약을 조제할 수 있다. 지방의 경우 주로 부산 해운대 원외탕전실에서 조제된다고 한다.

2~3시간 달여진 탕약은 환자가 쉽게 복용할 수 있고 처리가 간편한 스파우트 파우치에 담긴다. 파우치를 다시 고온·고압 환경에서 1시간 이상 멸균처리 하면 비로소 한약이 완성된다. 완성된 한약은 상온에서 장시간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는다고 한다.

약침 조제는 탕약 조제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센터 직원은 “조제실 내 모든 장비는 모두 멸균상태라고 보면 된다. 직원들도 무균복을 착용한다”고 밝혔다. 총 19품목 중 하루 1품목을 최대 3만 바이알(주사용 유리용기) 조제한다. 정제수로 바이알을 세척한 후 섭씨 300도의 고온에서 30여 분간 가열멸균한다. 바이알을 식힌 후 무균충전실에서 약침액을 충전하는데, 이곳은 무균·무진·무발열성 물질 환경을 구현했다. 약침액을 넣은 바이알의 공기를 질소로 바꾼 후 봉인해서 다시 한번 고압멸균 처리한다. 이를 전문 검수인이 다시 전수조사한다.

지난달 29일 한의학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확대와 관련 지난해 문을 연 국내 최대 한약 통합조제시설 '자생메디바이오센터'를 찾았다. 23일 경기 성남시 자생메디바이오센터에서 한약제조 과정과 연구시설 등을 둘러봤다. 사진은 유해물질 시험, 성분 확인 시험 등을 검증하는 3층 한약재 생산 및 품질검사 시설. /남강호 기자

◇ 치료 다음 날 직배송 받은 한약에 “미리 만든 거냐?” 의심받기도

1층에서는 정제수와 최종 생산된 약침 등을 최종 검사한다. 특히 약침의 경우 발열물질이 있는지, 약침액의 유효성분이 적정량 포함됐는지, 균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한약의 경우 익일 배송을 원칙으로 병원이나 외래환자의 자택에 바로 배송된다. 수도권은 센터 직원들이 직접 약을 배송하는데, 다음날 한약을 받은 환자 중에는 “진료 이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한약 아니냐”는 웃지 못할 의심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센터 관계자는 전했다.

공정이 이렇게 까다로운 관리 속에 이뤄지지만 센터의 실제 근무 인원은 150여 명 수준이다. 공정의 대부분이 자동화돼 기계·시설 관리 인력, 연구 인력, 전문 한약사, 전문 검수 인력 등의 비교적 소수의 인원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4층에는 JS뮤지엄이 있다. 설립자 신준식 박사와 자생한방병원의 역사, 신준식 박사가 재정립한 추나요법 등 각종 비수술 치료에 대한 소개 등이 미디어 아트와 함께 조화를 이뤘다.

자생메디바이오센터 전경/자생한방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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