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히잡 쓴 헤비메탈 밴드, 인도네시아의 걸파워 보여주다
데뷔 10년 만에 해외에서 팬 확보
가사는 여성 권리, 평화, 환경 보존
인도네시아에서 활동 중인 히잡을 쓴 3인조 헤비메탈 밴드가 데뷔 10년 만에 해외에서도 팬을 확보하고 있어 화제다. ‘바치프로프의 목소리’(Voice of Baceprot·인도네시아 순다족이 쓰는 순다어로 소음을 뜻함)라는 이름의 이 밴드는 여성 권리, 평화주의, 환경 보존 등 진보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춘 노래를 부르며 인도네시아에서 인기를 모았고, 지난해에는 미국·프랑스· 네덜란드에서 공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 시각) “히잡을 쓴 헤비메탈 밴드가 걸파워를 보여주고 있다”며 “바치프로프의 목소리라는 밴드가 인도네시아의 청중을 열광시킨 데 이어 서양으로 진출했다”고 집중 보도했다.
이 밴드는 영어, 인도네시아어, 순다어를 혼합한 가사로 된 노래를 부른다. 리드 싱어인 피르다 쿠르니아(23)는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공연에서 밴드의 히트곡 중 하나인 ‘공유재산이 아님(Not Public Property)’을 부르면서 “우리는 성차별에 내어줄 자리가 없다”고 소리쳤다. 피르다는 관중들에게 “동의없이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는 것은 최악의 범죄”라며 여성의 인권에 대한 가사를 담은 다음 곡을 연주했다.
치프로프의 목소리는 인도네시아 내 헤비메탈 밴드 중 유일하게 히잡을 착용한다. 밴드 구성원 모두는 20대 초반의 무슬림이다. 피르다는 “많은 사람들은 ‘누가 히잡을 쓰라고 강요했냐’며 우리 음악보다 히잡에 대해 더 많이 묻는다”며 “처음에는 부모님이 히잡을 쓰라고 해서 썼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우리가 히잡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밴드는 성별, 종교, 계급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노래를 부르면서 인도네시아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됐다. NYT는 “콘서트장에서 많은 팬들이 음악에 맞춰 헤드뱅잉(록, 헤비메탈 공연장에서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동작)을 했다”고 묘사했다. 인도네시아는 헤비메탈의 성지이기도 하다. 자카르타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헤비메탈 음악 페스티벌인 해머소닉(Hammersonic) 개최지다. 퇴임을 앞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유명 헤비메탈 밴드인 메탈리카와 메가데스의 팬이다.
하지만 이 밴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다. 바치프로프의 목소리 멤버가 히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헤비메탈 밴드로 사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주로 다루는 점이 비판받는다. 이들이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출신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메인 보컬 외에 드러머, 베이시스트 모두 자카르타 동쪽에 있는 자바주의 보수적인 지역인 가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들의 부모는 모두 농부다. 피르다가 자란 집에는 아직 수돗물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 연결도 쉽지 않다. 이들은 어린 시절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읽고, 논에서 게임을 하고 부모님이 듣던 인도네시아 팝 음악인 당둣(dangdut)을 들었다.
그러던 중 이들은 이슬람학교 중학생 시절에 만났다. 2014년 교내 연극에 참여하려다 선생님의 지시로 팝 음악을 연구하는 15명의 학생 모임에 포함된 것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다. 당시 선생님의 노트북에 있던 아르메니아계 미국 메탈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히트곡 ‘톡시시티(Toxicity)’를 연주하고 매료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선생님에게 악기 연주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고, 인기 있는 헤비메탈 음악을 연구한 뒤, 해당 음악을 연주한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하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모았다.
활동은 쉽지 않았다. 히잡을 쓴 여성은 온순해야 한다고 믿는 무슬림 남성이 특히 반발했다. 2015년에는 누군가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진 일도 있다. 그 돌에는 욕설이 담긴 메모가 붙어있었다. 교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당시 교장이 이들에게 “너희 음악은 금지된 음악”이라고 했다. 이에 자퇴하고 다른 학교를 졸업했다.
비치프로프의 목소리는 지난해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9개 도시를 돌며 첫 투어 공연을 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관중석에 있던 팬들이 이들을 향해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라는 뜻의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기도 했다. NYT는 “이들의 고향 마을에선 소녀들이 12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다”며 “이들은 여성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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