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 ‘그림자 전쟁’은 끝났다

2024. 5.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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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공격으로 중동서 게임 규칙 완전히 바꿔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판단 착오 가능성 우려
이스라엘의 대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지난 4월 14일(현지시간) 이란이 발사한 드론과 미사일들을 요격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가자 전쟁 이후 갈등이 심화해온 이스라엘과 이란이 최근 서로의 영토에 공격을 감행하며 중동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이란 이스파한에서의 공방 이후 양쪽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긴장은 일단 누그러졌으나, 은밀히 대립해온 양국이 ‘직접 공격’이라는 금기를 깼다는 점에서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씩 주고받은’ 이스라엘과 이란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지난 4월 19일 오전 4시쯤 중부 이스파한주 주도 이스파한시 인근에 있던 군 공항이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공격 수단을 두고는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등 여러 분석이 나왔으며 명확히 확인되진 않았다. 이란군은 “방공망이 의심스러운 물체를 격추했다”며 특별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핵시설도 피해가 없었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사회에선 이번 공격을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재보복으로 봤다. 이스라엘은 앞서 지난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등 13명을 사살했으며, 이에 이란은 4월 13일 드론 170여 기와 미사일 140여 발을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보복 공격한 바 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은 대부분 요격돼 피해는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재보복을 거론했다. 다수의 군사시설이 있는 이스파한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원점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4월 19일 공격을 감행하자 이란 현지 주민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피해는 적어 일상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으나, 자칫 양국의 전면전이 발발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스파한의 한 주민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우리는 모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걱정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은 곧 ‘5차 중동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평가절하하며 당장 반격에 나서진 않았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4월 19일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우리의 이익에 맞서 새로운 모험을 하지 않는 한 새로운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 인사가 이스라엘에 대한 신중한 대응 기조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스라엘이 애초 긴장 격화를 피하기 위해 이란에 제한적인 공격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파국까지 이르진 않았다고 봤다.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이뤄졌지만 그 강도 면에서 절제된 것이었으며, 여기에는 전면전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파국을 피하려는 미 정부의 방침도 이스라엘의 수위 조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계획을 미국에 사전 통보했으나, 미 당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이스라엘이 재보복에 나서면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 폭격으로 이란혁명수비대(IRGC) 고위 간부 등 여러 명이 숨졌다. | 신화연합뉴스



■‘그림자 전쟁’ 이후 중동의 운명은

이스라엘과 이란이 한 차례씩 공격을 주고받은 뒤 상황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만 양국이 ‘그림자 전쟁’으로 알려진 막후 대결을 벗어나 무력 공세의 물꼬를 튼 것은 우려스러운 지점으로 남아 있다.

중동의 오랜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은 그간 반목을 거듭하면서도 직접적인 충돌은 피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은밀히 공격하고 요인을 암살하면서 이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란 역시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친이란’ 대리 세력을 통해서만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전쟁’의 지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으로 이러한 구도는 흔들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을 압박하고자 이란혁명수비대를 겨냥해 공격 수위를 높였고, 이란은 가자 전쟁에 개입할 수 있음을 내비치며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그 뒤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고, 양측의 대응이 이어지며 ‘그림자 전쟁’은 실제 군사적 충돌로 표면화됐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이번 맞불 공격으로 중동지역에서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미 외교안보 연구기관 ‘우드로윌슨센터’의 메리사 쿠르마 중동국장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두 적대국 사이의 교전수칙을 완전히 바꿨다는 점에서 획기적 사건”이라며 “지역 전체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역내 여러 국가에는 전면전의 망령이 현실이 됐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특히 우려스러운 지점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판단 착오의 가능성이다. 그간 가자지구 전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으며, 판단 착오로 갈등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번 이란 영사관 공격에서도 이스라엘은 이란의 격렬한 보복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중동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면 전 세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단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잠잠해진 만큼 당분간 다시 가자지구의 포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앞서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진입하는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란과의 긴장이 격화되자 일시 보류한 바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네타냐후 총리가 긴장 확대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과 이란, 하마스를 상대로 좀더 과감한 조치를 원하는 이스라엘 내 강경론자 사이에 끼어 있어 의사 결정의 여지가 많지 않다고 봤다. 이에 기존에 하던 대로 하마스를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가자 전쟁에 다시 화력을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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