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아프리카서 떠나자… 러시아가 속속 접수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5.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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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S 등 대테러 전쟁의 요충지 니제르 이어 차드서도 철수 계획
빼낸 병력은 인·태 투입, 中 견제
지난달 13일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이 아프리카 주요 국가들로부터 잇따라 병력을 철수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힘의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동안 아프리카에 공을 들여온 중국은 영향력을 한층 확대하고, 러시아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 등을 통해 아프리카 분쟁 국가들에 대한 군사 개입과 자원 수탈을 가속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아프리카 서부 니제르에 주둔 중인 병력 1000명을 철수시키기로 한 데 이어 니제르와 국경을 맞댄 차드에서도 특수부대원 100여 명을 뺀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4일 “질서 있는 미군 철수를 위해 니제르 정부와 협의할 것”이라며 니제르 철군을 공식화했다.

인구 2500만명의 내륙국이자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니제르는 미국의 이슬람 테러 집단 소탕 작전에 핵심적인 곳이었다. 미국은 알카에다·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주요 활동 무대인 사하라 사막 남쪽 사헬 지역과 서아프리카에 오랜 기간 부대를 주둔시켜 대(對)테러 작전을 수행해왔다.

미국은 니제르 정부군 교육 훈련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이곳엔 불과 5년 전 1억달러(약 1400억원) 이상을 들여 지은 드론(무인기) 기지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군부 쿠데타 이후 니제르는 미국 및 유럽연합(EU)과의 군사 협정을 파기하고 러시아에 밀착했다.

그래픽=양진경

2010년대 들어 사헬과 서아프리카 지역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본거지로 부상했다. IS 등이 무슬림 인구가 많고 정치·경제가 불안정한 이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테러·무장 병력을 전략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이후 곳곳에서 연쇄 테러 등으로 인명 피해가 급증하면서 미국·프랑스 등이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 주로 현지 정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대테러 작전을 수행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같은 협력 관계가 곳곳에서 와해되고 있다. 미국이 공들여 육성한 엘리트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가 하면, 군정이 정권 연장을 위해 러시아 등에 밀착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니제르에 이어 인접국인 차드에 있던 100명 안팎의 육군 특수부대원들도 소수만 남기기로 했다. 차드 군정이 최근 수도 은자메나의 프랑스군 기지에 순환 배치된 미군 부대원들에 대해 활동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안보 이해가 또 한번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니제르의 다른 인접국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등에도 한때 미군이 파견돼 정부군과의 협업을 통해 테러 단체의 세력 팽창을 저지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쿠데타 등에 따라 2021년과 2022년 각각 미국과의 군사 협정을 파기한 상태다.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발을 빼는 건 외교 정책의 무게중심이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제어하는 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약 20만명에 이르는 해외 파견 미군의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는데, 중동·아프리카에서 빼낸 병력을 인도·태평양에 투입해 중국 대응에 집중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아프리카 내 미군 감축을 꾸준히 주장했고, 이 여파로 2020년 12월 소말리아에 있던 미군 700명이 철수했다. 이후 알카에다 연계 무장 단체인 알샤바브가 이 지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엔 미군이 약 6000~7000명 배치돼 있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1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주민들이 프랑스 대사가 떠날 것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뿐만 아니라 한때 사헬 지역에 많게는 5000명 이상 주둔했던 프랑스 역시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프랑스는 자국 식민지이기도 했던 니제르에서 군부와 대립 끝에 지난해 1500명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현재 차드 은자메나에서 첩보 활동을 주로 수행하고 있는 약 1000명의 병력이 아프리카 내 프랑스군의 핵심인데, 쿠데타 이후 반(反)프랑스 여론이 고개를 들어 계속 주둔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외에 프랑스군은 서아프리카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 홍해에 인접한 지부티 등에 약 3000명이 주둔해 있다.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중국의 입김은 더 세지고 있다. 미군이 발을 빼기로 한 니제르와 프랑스군이 2022년 철수한 말리에는 각각 1000명의 러시아군과 민간 용병들이 주둔 중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우고 있다. 국영 에너지 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지난달 22일 니제르 유전에서 원유를 구매하기로 하면서 4억달러(약 5500억원)를 선지급하기로 했다. 니제르 군정은 이 돈 등으로 서방 제재에서 비롯된 채무 6억달러(약 8300억원)를 상환할 계획이다.

여론조사 회사 갤럽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호감도는 58%로, 미국(56%)보다 2%포인트 앞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전략 경쟁 시대에 미국은 분명 아프리카에서 뒤처지고 있다”며 “‘불량 정권’들이 빠르게 힘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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