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7] 누가 병든 의료 체계에 구멍을 내는가?
“천공이 생겼소.” 뒤랑이 말했다. “퀴레트(수술 기구)로 말이죠?” “물론이오.” 뒤랑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그밖에 뭘로 한단 말이오?” 라비크는 검진을 계속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천공을 만들었고, 그걸 몰랐어요. 구멍을 통해 둥글게 휜 장의 일부가 끌려 나왔지요. 당신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던 겁니다. 아마도 태아막 일부가 아닌가, 생각했겠지요. 그걸 긁어낸 겁니다. 그래서 상처가 생겼고요. 맞지요?” 뒤랑의 이마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레마르크 ‘개선문’ 중에서
환자용 영양 음료를 사다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인근 병원에 갔다. A등급 병원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주차장 입구부터 혼잡했다. 대형 병원, 대학 병원으로 가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절박한 행렬이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정책이 의대생 집단 휴학, 전공의 이탈, 의대 교수의 휴진과 사직, 대형 병원들의 경영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일각에선 환자를 버렸다고 의료계를 비난하지만 사전에 충분히 검토, 조율하지 않고 강행하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우리나라 의사는 국비로 키운 인재가 아니다. 공무원도 아니다. 개인이 비싼 학비를 부담하고 스스로 밤새워 공부해서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남성은 군의관 3년 2개월을 포함, 최소 10년에서 15년간 노력한 전문 직업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나만 옳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며 채찍을 휘두른다.
베를린 종합병원의 외과 과장 루드비히는 정치적인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탈출, 프랑스에 왔지만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라비크라는 가명으로 불법 대리 수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무능한 의사의 실수를 만회해서 환자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몸이 된 것까지 복구할 수는 없었다. 한번 궤도를 벗어난 그의 삶은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수용소로 끌려간다.
정부는 뛰어난 의료 개혁 전문가인가?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의사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전 정권이 병들게 한 의료 체계에 결정적인 천공을 낸 것은 아닐까? 행복하지 않은 의사가 의무적으로 돌보는 환자는 행복할까? 의사가 고래라면 정부는 더 큰 고래다. 그 틈에서 고생하는 건 이권이나 선택권이 없는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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