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의정부시의 ‘기지촌’에 대한 인식
2022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장 김사열)는 취약지역 개조사업 신규 대상지 68개소를 선정했다. 이른바 ‘새뜰마을’ 사업이다. 새뜰마을 사업의 취지는 빈집·노후주택 정비, 슬레이트 지붕 개량, 상·하수도 정비 등을 통해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주민 공동체 활성화를 지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노인 돌봄과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 휴먼 케어(human care)와 주민 역량 강화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뜻은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 사업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재현’인지 돌봄 사회가 추구하는 ‘마을 만들기’인지 여부는, 사업 자체가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마을 만들기라면, 국가가 그 대상을 지정하고 지원 내용이 건설사업 위주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 파괴다. 또한 문화유산이 생활여건 개조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검토의 여지도 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선정 지역 중, 우려를 넘어 문화유산 삭제가 목적으로 보이는 곳이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의 빼뻘마을이다. 빼뻘은 “한번 빠지면 다시 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미군정 이후 미군이 70년 넘게 남한에 주둔하면서 생긴 상징적, ‘대표적’ 기지촌(基地村)이다. 기지촌(military camp town)은 말 그대로 단지 군 기지가 있는 지역일 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극심한 빈곤과 수탈로 인해 성 산업 공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오랫동안 멸칭과 낙인의 장소였다.
한편 기지촌은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지원운동가들이 국가와 미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해 온 역사의 공간이다. 특히 1986년 3월17일, 의정부시 가능동 주한미군 2사단 사령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 앞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지촌 여성운동 단체인 ‘두레방(My Sister’s Place)’은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미관계사, 지역운동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1년 후인 1987년, 현재의 캠프 스탠리 옆 빼뻘마을로 이전했다).
지난 38년간 두레방은 ‘기지촌 여성’들의 상담소, 쉼터, 공동체였다. 그들은 함께 식사하고 마을 아이들을 돌보았다. 2022년 9월29일, 대법원은 기지촌 성 산업 제도를 국가 폭력으로 인정했다. 8년3개월에 걸친 여성운동의 성과였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지금 의정부시는 두레방의 건물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두레방 건물을 철거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의 의미가 지자체 공무원의 인식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역사는 스토리, ‘콘텐츠’다. 수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가진 문화유산이 지자체의 단견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두레방은 즉각 입장문을 발표하고 두레방 건물에 대한 계획 철회를 요청하며 투쟁 중이다. 두레방은 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 동두천시 성병 관리소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경기지역시민단체 등과 함께 두레방이 빼뻘마을에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두레방은 과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검사와 관리를 해왔던 보건소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시설 내부는 인근 주민들의 주거 환경만큼이나 노후하고 협소하지만, 과거 기지촌 여성들의 애환과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왕조 중심 역사가 문제
두레방은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된다는 염원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두레방이 있기에 기지촌의 역사를 바로 알고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간다”는 방문자들이 남기고 간 소감들은, 그동안 두레방이 내담자 지원 활동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시각에서 시민들에게 기지촌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탈식민주의 운동의 산실임을 입증한다.
두레방 건물은 중요한 근대 문화유산이다. 미군 범죄, 주한미군의 생활사, 한·미 동맹에서 여성의 위치, 기지촌 성 산업의 의미, 기지촌 소설, 기지촌 문학…, 한국 현대사와 미국의 관계를 압축한 공간이다. 보존은 물론이고 이 건물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조형물이나 안내물을 설치해야 한다. 아울러 기지촌 여성 박물관도 필수적이다.
아픔의 역사도 선별적이다. 전국의 그 많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비해, 기지촌 여성 기념관이 안 될 이유는 없다.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은 침략과 함께 식민지의 문화유산을 빼앗아 자국에 전시하며 스스로 문명국임을 자처해왔다. 반면 우리는 ‘있는 문화유산’도 제대로 채록,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임의적이어서, 어떤 유산은 보존하고 핫 플레이스가 되는 반면 어떤 유산은 그 의미를 아는 이들이 드물다. 역사의식의 과잉과 결핍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왕조사 중심으로 생각하면 한국은 역사의식 과잉 사회다. 그러나 지역사, 향토사, 여성사 등을 주변적 역사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의식이 없는 사회다. 후자는 전문가도 드물고 사회적, 학문적 차원에서도 양성하지 않는다. 왕조 중심의 사고는 “문화유산=왕릉”이라는 사고를 낳았다. 왕릉이 철거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자체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등극하고 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지금도 매일매일 공사 현장에서 어떤 유산들(집, 골목, 상점…)이 사라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현행 문화유산관리법에 따라 반세기를 넘겨야 등록문화재 대상이 되기 때문에, 50년 안 된 건물은 평가조차 못 받고 사라진다. 50년이라는 기준도 왕조 중심 역사관의 산물이다.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격동성과 압축적 변화를 생각할 때 50년은 너무 짧다. 모든 역사에는 영욕이 함께한다. 이에 대한 안목과 판단은 사회적 역량에 달려 있다.
한국처럼 건설(파괴) 자본주의 위주에다 부동산 중심의 경제에서는, ‘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기가 정책을 대신한다. 1995~1996년 진행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나는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반대했다. 일제 잔재(殘滓)의 의미부터 논의되었어야 했다.
일제강점기가 없었더라도 ‘외부’와 왕래가 있는 한 어느 사회에서나 문화는 혼용되고 잔재(殘在)는 남는다. 명나라가 망하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던 조선이든 일제강점기든 현재의 미국 문화든, 깨끗하게 정리한다는 의미의 청산(淸算)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불가능하다. ‘국적 불명’, 하이브리드가 문화의 본뜻이다.
의정부시에 묻는다. 두레방처럼 주민들과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역사가 뚜렷하고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작은 건물을 부수어 흔적을 없애는 일이 그토록 다급한 업무인가. 의정부시의 두레방 철거 정책은 “수치스러운 역사”라는 사고방식보다는 단순한 무지, 즉 두레방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인 듯하다. 두레방을 없애기 전에, 의정부시 담당 공무원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평택과 오키나와의 경우
근현대 유산을 평가하는 목적은 결국 남길 것과 부술 것을 가리기 위함이다. 빼뻘은 기지촌 여성들의 상징적 고향이며, 두레방은 여성들의 유일한 쉼터이자 사랑방이다. 과거에 비해 다양한 이유로 마을에 사는 기지촌 여성들의 수가 줄었으나, 지금도 두레방에 의지하며 살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들인 70·80대 여성의 숫자가 여전히 많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빼뻘과 인접한 의정부, 동두천, 서울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두레방을 찾아오는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주일미군의 76%가 집중되어 있는 오키나와에 위치한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사례다. 미군이 자행한 과거를 볼 수 있는 사료와 예술작품을 통해 지역민뿐 아니라 오키나와를 찾는 전 세계인들에게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다크 투어’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도 평택시에 자리한 ‘사단법인 햇살사회복지관의 부설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은, 2022년 에코뮤지엄 사업을 통해 ‘일곱집매’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잇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일곱집매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지원하는 돌봄 공간이자, 지역의 역사 배움터가 되었으며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일곱집매가 평택지역을 넘어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기지 않는 데에는, 평택시 기지촌 여성운동가들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정부시는 두레방의 역사, 여성의 역사를 지우지 말라. 의정부시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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