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냐, 12위냐…기로에 선 韓수출

정영효/박한신/이슬기 2024. 4. 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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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품목에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 편중 '양날의 칼'
업황 사이클 따라 연 수출 1000억弗씩 요동

2016년 29조원이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017년 54조원으로 뛰어오른 뒤 2018년 사상 최대인 59조원을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슈퍼 호황기에 접어든 덕분이다. 이는 한국 수출액 급증으로 이어졌다. 한국 수출은 2016년 4954억달러에서 2017년 5737억달러, 2018년 6049억달러로 늘었다.

2019년에는 상황이 돌변했다.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서 D램 가격이 급락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8조원으로 전년 대비 반 토막 났고, 수출도 5422억달러로 10% 넘게 주저앉았다. 2021년부터 다시 반도체 시황이 살아나며 삼성전자 영업이익과 수출은 2021년 각각 52조원과 6444억달러, 2022년 43조원과 6836억달러로 반등했다. 지난해에는 다시 시황이 악화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고 수출은 6322억달러로 감소했다.

한국 수출은 반도체 업황 사이클과 큰 흐름에서 부침을 같이한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호황기인 2018년(20.9%)과 2022년(18.9%) 20% 안팎을 차지했고, 불황기인 지난해에도 15.6%에 달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일반기계, 석유화학, 석유제품 등 5대 수출 품목까지 살펴보면 이런 편중도는 더욱 높아진다. 2018년 5대 주력 수출품 비중은 2018년 52.5%에서 2020년 47.7%로 소폭 낮아지는가 싶더니 2023년 50.7%로 다시 높아졌다. 수출 지역 기준으로도 중국 미국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유럽연합(EU) 등 4대 수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66.1%로 전체의 3분의 2에 달했다.

품목 및 교역 상대 편중은 한국 수출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된다. 역대 정부가 수출 품목과 교역 상대국 다변화를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향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패권 경쟁이 격화해 중국 수출이 지난해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면 현재 8위인 한국의 글로벌 수출 순위는 12위로 4단계 하락한다. 5위 일본을 올해 앞지르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 시점은 멀어진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일반기계, 석유화학 등 한국의 수출을 떠받치는 핵심 품목은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 글로벌 차원에서 대대적인 생존 경쟁과 산업 재편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차·유'에 몰린 韓 수출…"글로벌 산업재편 대응 못하면 추락"

반도체는 비메모리와 메모리 가릴 것 없이 세계적으로 점유율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경제대국들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을 유치하려 보조금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2년 반도체 지원법(칩스액트)을 제정해 527억달러(약 71조원)를 지원하는 미국을 비롯해 EU 일본의 보조금은 155조원에 달한다. 일부 전문가가 공급 과잉을 우려할 정도로 반도체 생산시설이 세계 곳곳에서 새로 건설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중국은 2014년부터 총 5429억위안(약 100조원)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를 세 차례에 걸쳐 조성해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D램 시장은 인공지능(AI) 보급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첨단 제품 위주의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공급 과잉과 경쟁 격화 등 두 가지 위기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은 전기차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전기차시장에서 고급형을 대표하는 테슬라, BYD와 같은 중국 저가형의 협공을 받고 있다. 하이브리드카 같은 기존 자동차시장에서는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와 경쟁한다.

석유화학과 일반기계 시장은 중국에 빠른 속도로 잠식당하고 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주력 제품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이 말레이시아 대규모 생산기지(롯데케미칼타이탄) 재매각에 나선 것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한국은 6327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글로벌 수출 순위는 8위로 1년 전보다 두 단계 하락했다. 최대 상대국인 중국 수출이 절반으로 줄면 연간 수출은 5702억달러로 12위로 떨어진다.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와 최대 위기를 맞은 석유제품 및 석유화학의 수출이 절반으로 줄어도 한국 수출은 5344억달러로 13위로 내려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 수출이 무너지고 중국 시장이 끊기는 상황은 극단적인 가정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와 산업 구조 변화를 보면 ‘반도체와 중국 없는 한국 수출’은 더 이상 터무니없는 가정이 아니게 됐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을 본격화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IMF는 한국이 중국과 절연을 시도하면 국내총생산(GDP)이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5대 유망 소비재, 7대 유망 품목 등을 정해 수출 상품을 다변화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수산식품 화장품 패션의류 생활용품 의약품 등 5대 유망 소비재의 수출 규모는 2020년 324억달러에서 2023년 376억달러로 늘었다. 하지만 비중은 6.3%에서 지난해 5.9%로 오히려 낮아졌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수출은 농작물 재배와 같아서 투자라는 씨를 뿌려도 수출 실적이라는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글로벌 통상 구도 변화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산업 체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효/박한신/이슬기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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