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변호사의 법과 이슈] 유류분제도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

2024. 4. 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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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과 현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다만 현실의 변동이 법률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의 제·개정이나 폐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현실에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 뒤에나 법률이 현실을 따라잡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에 입법 당시에는 맞았으나 지금은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법률이 우리 법전의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특정 신분자에게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유류분제도도 그중 하나다.

유류분제도는 1977. 12. 31. 민법 일부개정으로 민법 제1112 내지 1118조가 신설되면서 도입되었다. 과거에는 일가족이 함께 모여 살면서 ‘집안 재산’의 증식과 유지·보존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였고 그렇게 일궈진 ‘집안 재산’은 일가족 모두의 부양을 위해 사용되었다. 외관상 피상속인 명의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온전히 피상속인 개인만의 재산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고 실질적으로는 일가족의 ‘집안 재산’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피상속인 명의 재산에 대한 피상속인의 처분권을 일부 제한하고 그 재산에 대한 일가족의 지분을 인정하는 것이 유류분제도의 본질이다. 유류분제도는 민법의 대원칙인 사적 자치의 원칙, 유언 자유의 원칙 등과 상충하는 측면이 있으나, 피상속인 명의 재산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가족의 기여, 피상속인 명의 재산의 ‘집안 재산’으로서의 일가족 부양기능 등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여 도입된 것이다.

유류분제도가 현대 가족사회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헌법재판소는 과거 몇 차례 유류분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2024. 4. 25. 헌법재판소는 유류분제도가 그 목적이 정당하고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적합하다고 하면서도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인정한 민법 제1112조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고(단순위헌 결정),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에게 유류분상실사유를 정하지 아니한 민법 제1112조 제1 내지 3호 및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2 규정을 유류분에 준용하지 아니한 민법 제1118조는 각 헌법과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였다(헌법불합치 결정).

민법 제1112조 제4호에 대한 단순위헌 결정으로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더 이상 유류분권자가 아니므로, 앞으로 누구를 상대로도 유류분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예컨대 형제자매 외에 다른 법정상속인이 없는 피상속인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배우자, 친생자로 인지되지 아니한 혼외자, 공익재단 등 제3자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유증하기로 한 경우, 종전에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위 제3자에게 자신의 법정상속분의 1/3에 해당하는 유류분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유류분에 관한 청구를 할 수 없다. 종전에는 피상속인의 유언과 무관히 자신의 법적상속분의 1/3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피상속인의 유언이 있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피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종전에는 온전히 자신의 의사대로 사후 재산을 처분할 방법이 없었으나, 앞으로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의사대로 재산을 제3자 또는 형제자매 중 일부에게만 유증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유언상속 시 제3자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가 동등한 지위에 있게 되는 셈이다. 다만 법정상속 시에는 여전히 민법이 정한 법정상속분에 따라 상속되므로, 향후 유언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 유언을 할 당시 유언자에게 의사능력이 있었는지 여부 등 유언에 관한 사항이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법 제1112조 제1 내지 3호에 대해서는 각 헌법에 합치되지는 않으나 2025. 12. 31.을 시한으로 국회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되는 것으로 결정하였으므로 당장의 실무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류분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계속되었던 만큼 민법 개정과정에서 유류분제도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과거 법무부는 유류분제도에 관한 민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부분(민법 제1112조 제4호)만 삭제하고자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사견으로는 유류분제도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류분상실사유와 기여분의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 산입 여부에 관한 사항은 유류분권의 존부 및 금액 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므로 입법경과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민병권

민병권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 특별수사부, 공정거래조세범죄조사부, 부실금융채무 조사본부 등에서 근무하면서 기업과 관련된 공정거래, 금융, 조세, 반부패 업무를 담당하였고, 퇴직 이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기업과 관련된 제반 법적 리스크 관리 및 자문, 조사·수사 대응 업무 등을 수행해왔다.

-前 부장검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現 민병권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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