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4. 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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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은 왜 유재석의 ‘핑계고’ 성공사례를 대놓고 거부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유재석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독보적인 예능MC 유재석이 SBS에서 새로운 TV예능을 런칭했다. 오래도록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함께했던 1970년대생 예능MC들이 하나둘 대세의 대열을 이탈하는 와중에, 유재석은 오히려 유튜브 '핑계고'로 '유재석 유니버스'를 다지고 확장하면서, 가장 부지런히 새로운 도전을 선보이는 중이다.

SBS '틈만 나면,'은 유재석의 신규 예능이 대부분 그렇듯 '런닝맨' 출신 PD가 새로이 런칭한 프로젝트다. 설정과 구성은 직관적이다. 유재석과 유연석이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일반 시민의 일터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상품을 걸고 게임을 수행한다. 유재석과 함께 배우 유연석이 MC로 나선다. '핑계고'와 '유퀴즈'에서 게스트로 한 두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지만 임팩트를 남긴 접점은 없기에 '유유' 콤비의 출발은 신선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제작 발표회 기사를 쭉 읽어보면 '입김'과 '차별화'가 키워드로 남는다. 이에 대한 반론을 펼쳤지만, 실제 방송을 보니 유재석 유니버스에 이미 검증된 성공 코드를 조합하는 방향으로 차별화 전략을 잡은 듯하다.

'틈만 나면,'은 유재석이 최근 성공시킨 코드들의 집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초기 '유퀴즈'의 일상성과 휴머니티, '핑계고'의 자연스런 수다와 토크, '런닝맨'의 게임을 물리적으로 더했다. 일반인과 함께 일상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미션을 통해 선물을 즉석에서 준다는 구성은 초기 '유퀴즈'의 전매특허다. 다만 '런닝맨' 출신들답게 토크와 미션의 비중을 바꿨다. 이색 직업 들여다보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 직업적 고충 혹은 특성에 관련된 토크를 잠시 나누고, 구두솔 세우기, 쟁반노래반, 휴지 날리기 등 게임에 몰두한다.

몸개그의 향연이 펼쳐지는 게임을 종목마다 최소 15분에서 20여 분씩 진행하는 데다, 1회 게스트로 이광수까지 합세하니, 과거 '런닝맨'의 바이브가 느껴져 반갑긴 하다. 그리고 잠깐 틈을 내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나누는 자리를 별도로 마련해 '핑계고' 스타일의 토크를 펼친다. 친한 사이에서 아무런 주제나 미션 없이 티격태격 주고받는 수다 자리다.

그래서, 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다. 유재석의 진가는 어떤 인터뷰이와도 웃음과 재미, 편안함을 마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진행자다. 나영석 사단에서 보여준 유연석 또한 인간적인 매력이 진한 친근한 스킨십이 매력이다. 여기에 게임이란 '런닝맨' 출신들의 근간이 되는 코드, 혹은 초심, 그리고 핫한 '핑계고'의 웃음을 더하는 것이 기본 골자인 듯하다.

그런데 교집합으로 가져온 코드들은 오늘날 유재석의 최고 성과라 할 수 있는 '핑계고'의 방향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유재석도 같고, 나오는 사람들도 비슷하고, 하는 이야기나 토크의 방식도 색다른 건 없음에도 '핑계고'가 최근 유재석의 TV예능 성적표와 달리 큰 사랑을 받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의 반대, 즉 소거된 조건들의 집합이란 점이다.

'핑계고'가 유재석의 다른 방송 활동과는 전혀 다른 평가와 새로움을 보여주는 이유는 추리, 인터뷰, 콩트, 캐릭터쇼 같은 거추장스런 장치들을 모두 덜어내고 토커 유재석의 본질만 꺼내놓기 때문이다. '핑계고'에는 게임, 인터뷰, 미션, 캐릭터쇼, 먹방과 소개 등이 없다. 대화가 있을 뿐이다. 그 반면 '틈만 나면,'은 요즘 러닝화의 빵빵한 미드솔처럼 스택하이츠가 높은 맥시멀한 방송 예능 구성이다. 정말 틈만 나면 기획된 상황과 설정이 펼쳐진다.

몰입을 위한 준비나 다짐이 비교적 필요한 일반인 출연자들과의 대화, 일정 부분 형식적일 수밖에 없는 인터뷰와 에너지가 필요한 리액션, 자연스럽지 못한 연출된 상황들은 '핑계고'에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반대로 '틈만 나면,'은 출연자도 힘을 주고 방송을 촬영하고, 사연자와 시청자는 함께한다기보다 명분을 주는 소재에 가깝다. 게임을 긴 시간 동안 성공할 때까지 진행하니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그 시간 동안, 사연자는 배경이 되고, 사연자와 만나서 만든 시너지나 새로움은 휘발된다. '핑계고'의 최대 매력인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화면 속 사연자도 장시간 멀뚱히 서 있거나, 옆에 빠져 앉아서 지켜보는데, 화면 뒤에 있는 시청자들이 능동적으로 즐기기란 쉽지 않다. '틈만 나면,'의 틈이 유재석 유니버스의 틈이 되어서는 새로움을 만들 수 없다. 검증받은 좋은 재료들을 많이 모았고, 요리사도 훌륭하다. 하지만 물리적 결합만으론 부족하며, 자연스럽지 못한 기획과 장치들은 수정이 필요한 레시피라는 점은 '핑계고'의 성공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증명됐다. 필요한 틈새 전략은 자연스러움을 위한 덜어내기의 기술, 혹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선사할 화학작용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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