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하이브 폭로전 보고 떠올랐던 2년 전 BTS의 '찐고민'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4. 3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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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이번 사태 이후 우리가 생각해볼 것들 (글 : 임희윤 음악평론가)


"에스파 밟을 수 있죠? ㅎ"
"걔들(방탄소년단)이 없는 게 나한테 이득일 것 같아서"

세상은 요지경 속입니다. 'K-문화 산업' 최고의 지성과 감성을 지닌 분들의 카톡을 통해 들여다본 세계가 어지럽습니다. 영상 미학, 철학적 세계관을 내세우던 고도의 시청각 예술가들이 벌이는 카톡 폭로전에서 진흙이 튑니다.

전산 자산, 그러니까 회사 지급 노트북을 회수한 뒤 PC 카톡을 포렌식해 언론에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전달한 하이브의 여론전, 직설과 욕설을 넘나든 민희진 대표의 2시간여 기자회견. 둘 다 연말 열릴 '2024 희박사 어워즈'의 '올해의 자극 콘텐츠 대상' 후보에 오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뉴진스 신곡 뮤비보다, 아일릿 댄스 챌린지보다 더 대단한 것들을 제작자 본인들께서 만들어버리셨습니다.

제3자로서 우리가 할 일은 뭘까요. 양측의 프레임 전쟁에서 한 발짝, 그들만의 전선(戰線)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면밀히 바라보는 일인지 모릅니다. 뮤직비디오 감상하듯, 화면에서 떨어져 가만히 턱을 괴고서 말이죠. 저 이전투구의 격투장은 월드컵 예선전이 아닙니다. 승패나 선악을 따지는 대신 경기장에서 튀어나오는 진흙 샘플을 받아봅시다. 수거해 성분 분석을 해보십시다.

 

'음반 밀어내기' 등 내부 고발, 사태의 발단이었나

민희진 대표 기자회견 직후, '회사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이 드러났다. 대부분 사실무근이라 반박할 가치도 없다'는 취지로 대응했던 하이브가 여론 반전에 실패하자 내놓은 2차 반박 보도자료는 '조목조목 반박'이라는 일부 언론의 수식어와 달리 조목조목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절반 가까이는 말꼬리 잡기에 불과했고, 심지어 언급 자체를 피함으로써 확전을 막고 프레임을 다른 곳에 설정하려는 듯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바로 '음반 밀어내기'입니다. 발매 일주일간의 판매량, 즉 '초동' 판매량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편법적 행위죠. 음반 유통사나 자회사를 이용해 대량 주문을 넣는 방식, 팬 사인회 등 사행성을 부추기는 이벤트 등을 이용한다는 게 업계 안팎의 전언입니다.

사진 : 연합뉴스


민희진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흙탕물 싸움의 발단은, 한 달여 전 어도어의 하이브를 향한 내부 고발 관련 질의서 발송입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내부 고발은 '내부에서 하는 고발'이 아닙니다.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조직이 저지른 비리를 폭로하는 행위'입니다. 즉, 내부자가 외부를 향해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행위입니다.

이 내부 고발 질의서에 아일릿의 베끼기 문제, 뉴진스 차별 대우 문제와 함께 음반 밀어내기 등 K-팝 선도 기업으로서 기존 업계 병폐를 답습하고 있는 실태에 대한 고발도 함께 담겼다는 것이, 관련 문서를 열람해 본 분들의 증언입니다. 민희진 대표도 25일 기자회견 때 언급했지만 본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바람에 정작 외부자이자 관람자인 '우리들'에게 중요한 이 정보(시스템에 대한 내부 고발)는 무게감 있게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향후 언론에서 이 부분이 집중 조명된다면 이번 사태는 또 다른 '핵폭발'로 2차 발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 전 분출됐던 방탄소년단의 '찐고민'

우리가 살펴볼 두 번째 더러운 진흙은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허상입니다.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나 뉴진스 차별 대우 주장은 민 대표의 자의식 과잉, 사적인 억울함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 대표의 본의와 상관없이 이 부분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근년에 이뤄진 K-팝의 글로벌 성공은 제2의 한강의 기적, 문화 버전 한강의 기적이라 할만합니다. 단, 국가 경제 측면에서 한강의 기적이 30, 40년을 두고 이뤄졌다면 K-팝이나 하이브 버전 한강의 기적(또는 용산의 기적)은 3, 4년 새에 폭발했다는 면에서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2010년대 말 방탄소년단의 미국 진출, 2020년 'Dynamite'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 하이브의 코스피 상장은 숨 가쁘게 이뤄졌죠. 'Dynamite'의 성공은 상징적이자 실질적이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 세계를 따라온 많은 음악 팬과 전문가는 'Dynamite'에 대해 대단히 좋은 팝송이라고 평하는 한편, 방탄소년단의 세계관과 스토리 라인이 무너진 계기로 보기도 합니다.

영국인 2명이 오롯이 만들어 준(작사, 작곡, 프로듀스) 곡이었죠. 멤버 일부가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리던 방탄소년단 디스코그래피의 통례에서도, 청춘의 방황·갈등·폭주·사랑과 같은 기존 스토리라인에서도 한참 벗어났습니다. 당시 발매된 'Dynamite' 싱글 바이닐은 디지털 섬네일과 같은 디자인의 표지에 속지 하나 없이 골판지 안에 7인치 판 하나 덜렁 들어있는 부실한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중국 제작사에 주문해 급하게 찍어냈습니다. 차트 성공을 위해 급조된 피지컬 판매량 증대용이란 의심을 살 만한 퀄리티를 자랑(?)했습니다. 상장을 앞둔 잰걸음이 느껴졌습니다.

2022년 6월 14일 저녁을 기억하시는지요. 방탄소년단의 유튜브 채널인 '방탄티비'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파문을 일으킵니다. '찐 방탄회식'이라는 이 영상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찐고민'을 앞다퉈 분출해 냅니다.

출처 : 방탄티비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RM)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니 성장할 시간이 없다. 언젠가부터 번안 기계가 되면 제 역할은 끝난 것." (RM)
"(데뷔한) 2013년부터 한 번도 재미가 없었다. 그때는 할 말은 있어도 스킬이 없었는데 지금은 할 말이 없다." (슈가)
"기계가 되어버린 느낌." (진)

하나하나가 절절히 다가왔는데 저는 특히 RM의 말 가운데 '번안 기계'란 키워드에 꽂혔습니다. 작사나 작곡도, 번역도 아닌 '번안'이란 단어를 왜 썼을까요. K-팝에 일반화한 '인터내셔널 A&R(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쓰이는, 새로운 노랫말과 악곡을 수급해 조립하는 시스템)'은 표절 우려를 줄이고 음악적 질과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여했지만 때때로 독창적 국내 크리에이터들의 개성을 희석하거나 희생시키는 경우도 발생시켰습니다.

RM이 말한 '번안 기계'가 뭘까요. 국내외 작곡가들이 단기간 한데 모여 합숙 훈련이나 수련회 느낌으로 신곡을 합작하는 이른바 송캠프에서는 트랙(비트) 메이커(작곡·편곡자)와 톱 라이너(보컬 멜로디 창작자)가 합을 맞춥니다. 톱 라이너는 트랙에 맞춰 즉흥적 느낌대로 멜로디나 플로(flow)에 어울리는 가사를 맥락 없이 지어 부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모(또는 가이드)는 국내 작사가에게 '되도록 원곡의 발음 흐름에 맞춰서 비슷한 음운의 한국어 가사를 붙여달라'는 권고와 함께 전달됩니다. 국내 작가들 입장에서는 이 작업이 창작이되, 제한이 분명한 창작이 되는 셈이죠. 왜 주체적 창작자였던 누군가는 '번안 기계'가 될까요. 성과주의 때문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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