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더 줄테니 대학 무전공 늘려라" 尹 정부의 강경론과 섣부름

김다린 기자 2024. 4. 30. 11: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대학 무전공 무대책➊
무전공 전형 최대 30%까지
이주호 부총리 공언한 비율
‘No 무전공 No 인센티브’ 강행
대학 현장 반발에 한발 물러서
무전공 늘리면 대학 평가 가산점
2025년부터 실질적으로 시행
급하게 학사제도 개편하다보니
갈등 빚는 대학 줄줄이 나타나
공론화 과정 없이 정책 드라이브
尹 정부의 또다른 불통정책 되려나
교육부가 내세운 무전공 확대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 윤석열 정부는 때론 '폭주 기관차' 같다. 정책을 추진할 땐 어지간해선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노동개혁ㆍ의료개혁ㆍ연금개혁 등을 밀어붙일 때 공교롭게도 똑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다고 공론화 과정이나 설득하는 절차를 먼저 밟은 것도 아니다. 결정하면 마냥 밀어붙인다.

# 최근 교육부가 추진 중인 '무전공 선발 확대 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무전공 신입생을 늘리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이 대학 현장의 현안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몇몇 대학은 구성원과 소통하지 않은 채 무전공 학생을 늘리려다 갈등을 빚었거나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 왜 무전공 전형을 확대해야 하는지, 시행 시기는 왜 내년인지, 무전공 확대책 때문에 통폐합하는 과는 어떤 것이고 그 기준은 무엇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여론에 묻고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도 없다.

# 그런데도 교육부는 '속전속결'이 불가피하단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충분한 시범운영이나 평가의 시간을 갖기보단 학령인구 감소와 시장의 변화에 대비하는 게 먼저라는 거다. 대학 역시 문제점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무전공 전형을 확대한 곳에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 지금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무전공 확대책'은 과연 백년지대계로 적합할까.더스쿠프가 視리즈 '尹 정부의 무전공 무대책'을 통해 답을 찾아봤다. 그 첫번째 편, 실체적 오류다.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 확대 정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총선이 끝난 지 3일 후인 4월 13일. 서경대 홈페이지에는 학생처장 명의의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학생 여러분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못하고 촉박하게 알려드리게 됐습니다. 심려를 끼친 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학교가 학생에게 고개를 숙인 이유는 섣부른 '학사제도 개편' 때문이었다. 이보다 앞선 4월 9일 서경대는 "11개의 학과를 2개의 단과대학으로 통폐합하겠다"는 내용을 알리면서 개편 시점을 2025년으로 못 박았다. '학사제도 개편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신설된 새 단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1학년 땐 자유롭게 수업을 들으며 여러 전공을 탐색한 후, 2학년 때부터 '진짜 전공'을 정한다. 이른바 무전공 입학이다. 전공 구분 없이 1학년으로 입학한 뒤에 2학년 이후에 전공을 결정하는 입시 형태다."

재학생, 특히 갓 대학에 들어온 1학년에겐 너무나 불투명한 개편안이었다. 어떤 '과'가 사라지는지, 만약 '과'를 통합하면, '폐과 학생'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의 내용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개편안을 발표한 시점도 문제였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학생들이 중간고사 준비에 몰두하던 때였다. 그것도 총선 전날, '기습적인' 발표였다.

학내 여론이 달아오른 건 당연했다. 학교 커뮤니티는 들끓었고, 교정 곳곳에 개편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서경대 총학생회 측은 "학교 측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 '교육부 지침에 따른 변동이 있을 것'이란 말만 했을 뿐 세부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학기가 시작한 지 한달여가 흐른 시점에 개편 내용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학칙 개정안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총장이 나섰다. 학생들과 간담회 자리를 여러 차례 만들었다. 총장은 재학생 소속 학과 동일, 학위명 유지 및 동일한 커리큘럼 제공, 신설 학부 명칭 수정, 학습 환경개선 투자, 주요 사안 발생 시 구성원과 소통 등을 약속했다. 긴밀한 소통을 약속받은 학생회는 개편 반대 운동을 잠정 중단했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학사 개편을 되돌리는 결정을 내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건 서경대만이 아니다. 건국대는 갈등의 골이 훨씬 깊다. 학교와 학생은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마저 포기했다. 학생들은 학교 행정관 점거 농성에 나섰고, 총장실엔 근조화환이 놓였다.

재학생들은 학사 개편에 따른 교육권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건국대 역시 서경대처럼 내년부터 일부 학과의 입학정원을 줄이고 자유전공 학부에 배치한다. 일부 학과는 유사학과와 통폐합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조재희 건국대 총학생회장은 "학교에선 '교육부가 시간이 촉박하게 정책을 발표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할 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갈등이 외부로 분출한 곳만 해도 서울대와 성신여대, 경북대, 덕성여대 등으로 숱하다. 갈등의 강도는 제각각이지만, 이유는 똑같다.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 없이 학과를 통합하고 무전공 신입생을 늘리겠다는 '학사제도 개편안' 때문이다.

대체 대학 현장에선 왜 이런 난맥亂脈이 연출되고 있는 걸까. 답은 서경대 학생처장의 공지사항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부에선 전공의 벽을 넘는 융합교육, 교육체제 개편, 학사구조 유연화 등을 강조하는 '대학 교육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학 평가에서 무전공 구성과 규모를 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해 재정지원액을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정책을 수용하고 교육부가 제시하는 정량지표뿐만 아니라 적극성ㆍ도전성 등의 평가도 충족시키고자 합니다…."

요약하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졸속으로 '무전공 확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지금 '무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걸까.

■ 교육부 밀어붙이기 = 지금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지난 1월 2일 교육부가 공개한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 시안' '국립대학 육성사업 개편안 시안'에 따르면, 수도권 사립대와 국립대는 2025학년도에 각각 20%ㆍ25% 이상, 2026학년도에 25%ㆍ30% 이상 무전공 입학생을 모집해야 추가 지원금(인센티브)을 받는다.

두 지원사업의 인센티브 총액은 7836억원(사립 4410억원ㆍ국립 3426억원). 사실상 'No 무전공, No 인센티브'로 신입생 상당수를 무전공 전형으로 뽑으란 얘기였다.

대학 사회는 불만을 터뜨렸다. 당장 내년 신입생의 4분의 1, 혹은 5분의 1을 전공 없이 뽑아야 하는데, 이들의 커리큘럼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난감했다. 전공 없이 뽑는 인원만큼 기존 학부의 인원을 줄이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학과 규모를 축소하면 해당 학과 구성원과의 갈등이 벌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반발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3주 뒤인 1월 24일, 올해 주요 정책 계획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올해는 대학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준비도와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한발 뺐다.

그런데 물러서는 폭이 너무 좁았다. 그로부터 6일 후인 30일 교육부가 확정해서 발표한 '2024년 대학혁신 지원사업 및 국립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에 따르면, 무전공 학과를 확대하는 대학에 가산점을 주고 더 많은 정부 지원금을 받도록 했다.

교육부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정원의 상당수를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사진=뉴시스]

'No 무전공, No 인센티브'보단 강제성이 덜했지만, 무전공 확대를 유도한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수도권 사립대의 경우, 무전공 입학정원을 전체의 25% 이상으로 확대하면 가산점을 최대 10점까지 받을 수 있다. 가산점 여부에 따라 학교가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는 수십억원씩 차이가 났다. 따져보면, 처음 강조했던 대로 무전공 비율을 큰 폭으로 확대하란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학기 시작을 앞둔 시점에서 각 대학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선 학사제도 개편을 서둘러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공론화 과정'은 생략됐다.

지금의 혼란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도기로 보기도 어렵다. 언급했듯 2025년은 '가산점 부여'란 방식으로 한걸음 물러섰지만, 2026년부턴 무전공 선발의 일정 비율 이상 확대를 강제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부는 이런 계획을 올해 하반기에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원의 25%든 목표를 정하고 정부가 국고 인센티브를 더 주는 방식은 교육부로선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이라면서 강행 의지를 피력했다. 갈등이 확산하는 건 어쩌면 시간문제란 얘기다.

■ 무전공 정책의 실체 = 교육부가 강경 모드를 풀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엔 이유가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정기총회에서 대학 총장들의 '속도 조절' 요구를 들은 이주호 부총리의 말을 들어보자.

"사회 각 부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과 같은 '빅블러(Big blur)' 시대엔 융합인재 양성이 절실하다. 전공 선택 문제는 빨리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그간 한국의 대학은 너무 학과별, 전공별로 분절화해 있고 아이들의 전공 선택에 벽이 쳐져 있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 자기 전공으로 직업을 갖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

'빅블러'는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걸 의미한다.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산업 현장에 대비하려면 전공의 벽을 허물고 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거다.

언뜻 무전공 전형은 이런 문제를 단숨에 풀어낼 획기적인 정책처럼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 중 상당수는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 취직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율은 50.0%(20 2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중요하다 보니 성적에 맞춰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는 방증이다.

전공과 직업의 미스매치는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 미스매치'로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넓히면 이들의 '융합적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전공 확대책'은 눈여겨볼 정책인 건 맞다. 저학년 때 다양한 학문을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전공을 선택하거나 여러 학문을 전공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어서다.

2025년도 학사 개편에 나선 대학들이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사진=뉴시스]

다만 교육부가 인센티브를 앞세워 '무전공 확대책'을 밀어붙이는 게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입학생이 갈수록 줄고 있고, 등록금은 수십년째 묶여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은 대학 운영에 필수 요소다. '운영자금'이 절실한 대학으로선 정부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전공 확대책'은 정부가 나서 밀어붙일 만큼 '완벽한 대책'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여러 전공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커리큘럼이 부실해지거나 학과가 아예 사라질 수 있다.

구조적인 문제도 갖고 있다. '무전공'으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취업에 유리한 일부 학과로 쏠릴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기초학문이 무너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전례前例가 있다. 서울대ㆍ고려대ㆍ홍익대 등 일부 대학은 무전공과 비슷한 형식의 '자유전공학부'를 시행 중이다.

이중 서울대 자유전공학부(2010~2023년)에 입학한 학생이 가장 많이 선택한 학과는 경제학과(18.1%)와 경영학과(17.5%), 컴퓨터공학과(11.3%) 순이었다. 상위 3개 학과를 선택한 학생이 자유전공학부생의 절반(46.9%)에 육박했다.

전국교수연대회의 관계자는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지금의 체제에서도 전공 선택권이 없는 게 아니다"면서 "전과, 복수전공, 부전공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가 원하는 전공으로 바꿀 길이 열려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면밀한 준비가 필수다. 그 과정에서 비인기학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나와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무전공 확대책' 외에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 소재 대학 학생처 교직원은 "입학 비율만 던져놓고 나머지 부작용은 알아서 조율하란 식이다보니 학내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무전공 확대책의 실체를 의심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전국교수연대회의 관계자는 "융합 인재 육성이란 포장만 그럴듯할 뿐, 대학을 시장이 원하는 대로 구조조정하려는 의도가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대학 정책은 '산업과 연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계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게 대학의 책무라는 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교육부의 첫번째 임무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라고 강조했을 만큼, 현 정부는 대학을 취업사관학교 정도로 여긴다. '반도체 인재 15만명 육성' '디지털 인재 100만명 육성' 같은 계획들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무전공 확대책은 과연 백년지대계를 설계하는 교육 정책으로 적절할까. 만약 적절하다면 공론화 과정과 설득 절차를 거쳤을까. 이 문제는 視리즈 '무전공 무대책' 2편에서 살펴봤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