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블링컨 방중 결과와 한중관계 숨통[시평]

2024. 4. 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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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美中 수교 45년 상하이도 방문
푸틴 방중 앞두고 관심사 논의
러시아에 무기 부품 공급 우려
중국 공급 과잉은 韓과도 직결
시진핑 “첫 단추 중요” 큰 의미
한중일 3국 회의 전략에 도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4∼26일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방문했다. 올해는 미·중 수교 45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상하이가 일정에 포함된 이유를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상하이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2년 2월 미·중 수교의 초석을 다진 첫 중국 방문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을 이른바 ‘상하이 코뮈니케’로 발표한 곳이다. 이런 정치적 의미에서 그의 방문 결과가 주목됐다. 단기적인 성과가 보이진 않지만, 적어도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회의에서 양국이 합의한 내용이 모두 순조롭다는 게 눈에 띈다.

블링컨 방중의 정치적 의미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미·중 수교 45주년이 되는 해의 방문이라는 점이다. 미국 대선의 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중이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미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둘째, 5월 대만 총통 취임과 11월 미 대선을 앞둔 방문이었다. 셋째, 5월로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 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의 대러 방위산업 지원 문제에 민감한 미국의 입장을 사전에 전하려는 언행에서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 블링컨이 유독 강조한 미국의 입장과 우려는 3가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대러 지원 문제, 펜타닐(마약) 유통 문제와 중국의 공급 과잉 및 인적 교류 문제였다. 국방·군사 분야에서 미·중은 이번 방문에서 지난해 합의한 소통 채널의 가동에 대체로 만족감을 보였다. 17개월 만이던 지난 16일 양국 국방장관회담이 화상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이후 양국의 해군과 공군의 실무회담도 연속으로 열렸다. 그러면서 대만과 남중국해, 북한·이란·이스라엘,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양측 전략 소통 채널의 재가동을 알렸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특히 중국의 러시아 지원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

블링컨도 이 문제를 상당히 강조했다. 중국의 대러 무기 공급 중단에 만족하지만, 러시아의 방산 건설과 운영을 가능케 하는 지원에 불만을 드러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그는 중국이 러시아가 무기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중대한 부품(초소형 전자기술·기기·장비 등)을 제공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중국이 자제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더 많은 제재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 유럽의 입장도 압박 도구로 활용했다. 게다가 중국이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이 러시아의 무기 생산에 일조하는 것을 유럽의 안보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전했다.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유럽과 관계 개선의 어려움을 부각했다.

미국의 대중 압박은 여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미국 유입 문제의 심각성을 강력히 피력했다. 외교 채널로 부족한지 블링컨은 중국 공안부장을 직접 만나는 강수를 뒀다. 이는 아마도 미·중 수교 이후 미 국무장관이 중국 공안부장을 직접 만난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난 1월에 출범한 미·중 마약대응 실무그룹의 첫 회담에 대한 가이드라인 및 미국의 입장을 전했다.

그의 과잉 공급 지적은, 세계 시장의 중국산 수요가 10%에 불과한데도 중국의 글로벌 생산량이 30% 이상을 점한 논리에 근거했다. 또한, 그는 중국의 반(反)간첩법 등 외국인의 불안을 가중하는 일련의 법안을 양국의 인문 교류와 경제활동 방해 주범으로 꼽으면서 해결을 촉구했다. 특히, 5월로 예정된 미·중 관광 당국의 첫 회담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시 주석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식으로 대응했다. 중국은 생존과 발전을 위한 문제 해결의 성의를 보일 것이다. 중국이 불가피하게 저자세를 취할 때 우리는 미국의 동맹으로서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한다. 한·중·일 3국 회의를 앞두고 전략적 시사점이 많다. 우리가 의제를 설정하고 협의를 주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공급 과잉 문제를 우리도 주목해야 한다. 이제 한·중 무역 구조가 우리의 수입 증대로 바뀐 이상, 이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우리나라도 수급 시장의 혼란과 인플레이션 가중이라는 자명한 결과를 방지해야 할 때가 됐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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