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이 폭발해 아이들이 숨졌다 [취재후]

안서연 2024. 4. 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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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공권력에 의해 3만 명 넘게 희생된 제주 4·3 당시 군경 토벌대가 버리고 간 폭발물이 터져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갖게된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폭발 사고는 4·3특별법에서 규정한 4·3 기간을 지난 시기에 발생하기도 했지만 최근 4·3 이후 수류탄을 밟고 숨진 어린이 2명이 희생자로 결정되며 전환점이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KBS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폭발사고들에 주목해 당시 어린이였던 피해자들을 취재한 이후 그날의 진상에 대해 당시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제 친구들도 폭발사고로 죽었습니다."

지난 29일 방송국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여든을 훌쩍 넘은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정정한 목소리로 70여 년 전 제주도 서귀국민학교(현 서귀포초등학교)에 있었던 폭발사고를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KBS가 4·3특집으로 연속 보도한 <4·3 폭발사고 최초 보고서>( ‘장난감의 비극’…폭발물 사고 피해 실태 최초 보고 )를 본 뒤 희생자 조사를 위해 증언에 나선 겁니다.

그리고 보도 이후, 생존자와 목격자들이 70여 년 만에 그날의 진상을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서귀포 남원 폭발사고 희생자 고 김동만의 동생 김기만 씨


■ 폭발사고 피해자들, 과연 이들뿐일까?

지난 1월, 4·3특별법에 명시된 4·3기간1947년 3월 1일~1954년 9월 21일)을 2년 가까이 지나 폭발사고로 숨진 어린이 2명이 희생자로 결정됐습니다. 군부대 설치 여부를 따져볼 때 4·3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희생자 결정만 기다리던 유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제주4·3희생자 심사 보류 1년…손놓은 제주도? )을 보도해드린 적 있습니다.

이들이 결국 희생자로 결정([단독] 제주 4·3 기간 지나 숨진 어린이 2명, 첫 ‘희생자’ 인정)된 이후, 과연 폭발사고로 희생된 피해자들이 이들뿐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후속 취재에 나선 결과 군경이 주둔했던 해안마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폭발사고가 더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이 확인했습니다.

서귀포 표선초등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폭발사고 희생자 위령탑


■ 동생들이 밝힌 죽음…유일한 기록

1950년 7월 서귀포 표선국민학교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는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유일하게 기록된 폭발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어린이 3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5년 만인 2015년 사건을 공론화시킨 건 형제를 잃은 동생들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형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목격자들을 찾아가 진술을 듣고 제적부까지 확인하며 또 다른 유족들을 찾아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겁니다.

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강상준 씨


취재진 역시 수소문 끝에 충북 청주에 사는 당시 목격자를 만나 폭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온 마을은 슬픔에 잠겼다고 합니다.

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생존자인 서근숙 씨(오른쪽)와 폭발사고 희생자 고 김춘강의 남동생 김재옹 씨(왼쪽)


■ 76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취재 결과 과거 서귀국민학교였던 서귀포초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시기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 학생 희생자 명단에 있는 '서귀국민학교 서근숙'은 학교에서 폭발물로 인해 후유 장애를 갖게 됐다며 직접 희생자 신청을 했습니다.

피해 장소가 학교인 만큼 희생자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동안 관련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은 일단 서근숙 할머니를 찾아가 봤습니다.

서 할머니는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76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사고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서 할머니에 따르면 1949년 3월 개학 날 운동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28명이 다치고 5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서귀국민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고 김춘강의 언니 김순여 씨


파편에 맞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서 할머니는 자신이 희생자로 인정되자 당시 숨진 친구 고 김춘강의 가족에게 연락했다고 합니다.

고 김춘강의 언니는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사고 당시 기억을 털어놨습니다. 교실 바닥에 뚫려있는 구멍에 9연대가 폭발물을 넣어놨고 아이들이 이걸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 참변을 당했다는 겁니다.

실제 취재진이 확보한 당시 생활기록부에는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생활기록부를 뒤져본다면 또 다른 희생자들을 찾아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수류탄 갖고 놀던 아이들 숨지고 눈 실명

안타까운 폭발사고는 북촌국민학교 인근에서도 있었습니다. 북촌국민학교는 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입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순경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수류탄을 갖고 놀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순경 놀이를 하고 갖고 놀던 장난감이 하필 수류탄이었다는 점에서 공포스러웠던 당시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북촌국민학교 폭발사고 생존자인 윤상범 씨


이 수류탄이 터지면서 6살, 7살 난 어린이 두 명이 숨지고 2명은 한쪽 눈이 실명되는 등 후유장애를 갖게 됐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숨진 고 황태석의 유족이 지난해 희생자 신청을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고 황태석의 죽음을 목격한 생존자는 70여 년간 살아남은 미안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당시 사고를 털어놨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들도 희생자로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북촌국민학교 인근에서 주운 수류탄으로 인해 제주보육원에서 폭발사고 피해를 당한 원홍택 할아버지의 오른팔

■ 고아가 된 아이의 장난감

북촌국민학교 인근 폭발사고를 취재하면서 폭발사고 피해가 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피해자는 올해 여든셋 원홍택 할아버지입니다.

원 할아버지는 북촌국민학교 집단 학살 당시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돼 보육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학교 언저리를 맴돌던 원 할아버지는 수류탄 하나를 주워서 보육원에서 친구와 놀다가 폭발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친구는 숨지고 원 할아버지는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원 할아버지는 여지껏 이 피해 사실을 꺼내놓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후회해봤자 소용없지 않으냐'는 할아버지 말 속에서 마음에 박힌 굳은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귀포 남원 폭발사고 희생자 고 김동만 동생 김기만 씨


■ 피해는 더 있었다…망가진 네 자매의 삶

앞서 언급했다시피 올해 초 희생자로 인정받은 어린이 2명은 4·3 기간(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을 2년 지난 1956년 5월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숨졌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엔 불인정될 뻔하다 심사 보류로 재조사가 이뤄진 끝에 어렵사리 희생자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서귀포 남원 어린이 희생자 심사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4·3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피해가 불인정 된 사례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수소문 끝에 희생자 인정을 신청한 유족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고 3개월 뒤인 1954년 12월 송당 민오름에 갔다가 폭발물을 밟아 목숨을 잃은 허두현 씨의 딸들입니다.

대들보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어린 네 자매와 지적장애가 있던 어머니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 폭발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허금순 씨


네 자매는 10년 전부터 두 차례나 아버지를 4·3희생자로 신청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폭발사건이 4·3 기간을 지나 발생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조사조차 받지 못한 겁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희생자 신청 기간이 아니다 보니 유족들은 속앓이만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올해 초 기간이 지나도 희생자로 인정된 사례가 나온 만큼 이 사고 역시 재심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 "폭발사고는 엄연히 4·3 피해"…추가 진상조사 시작

일각에서는 폭발물 피해가 군경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닌 만큼, 희생자로 보기 어렵단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유족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한 유족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수류탄을 아이들이 만들었겠습니까, 아니면 그 부모가 만들었겠습니까, 군인이나 경찰이 흘린 수류탄으로 꽃 같은 아이들이 희생된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역시 "4·3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왜 그때 거기에 폭발물이 있었겠느냐"며 "어린이들이 신기해서 쇠뭉치를 갖고 놀다가 폭발을 했다면 그것은 4·3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폭발사고로 희생된 어린이들 가운데 표선국민학교 희생자들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4·3 희생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4명뿐입니다.

KBS의 보도 이후 제주4·3평화재단은 폭발사고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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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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