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 대장증후군, 탈출 비밀번호는 ‘FODMAP’

곽노필 기자 2024. 4. 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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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유제품·밀 등 발효성 탄수화물 ‘포드맵’ 줄이고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이 약물보다 더 효과
스웨덴 예테보리대 연구진이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기존 치료 약물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식이요법 두 가지를 확인했다. 예테보리대 제공

과민성대장증후군(IBS)은 10명에 1명꼴로 증상을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 가운데 하나다. 복통과 설사, 변비 등을 일으키고 복부 팽만감을 수반하기 때문에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만 딱히 즉효약이 없는 까다로운 질환이다. 증상을 완화하는 약과 함께 알코올과 매운 음식, 카페인을 피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서서히 낫기를 기다려야 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 연구진이 기존 치료 약물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식이요법 두 가지를 확인해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랜싯 소화기학과 간학>(The Lancet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제안하는 두 가지 식이요법 중 첫 번째는 포드맵(FODMAP) 식품을 적게 섭취하는 것이다.

포드맵이란 유제품이나 밀, 일부 과일과 채소에 함유된 올리고당, 이당류, 단당류 및 폴리올(당알코올) 등의 발효성 탄수화물을 가리킨다. 이런 물질은 소장에서 완전히 소화되거나 흡수되지 않은 채 대장으로 넘어가 그곳의 미생물에 의해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는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우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 밀로 만든 파스타와 빵류, 콩류, 꿀, 감미료 등이 대표적인 포드맵 식품에 해당한다. 견과류에선 캐슈너트와 피스타치오, 과일에선 사과와 망고, 수박, 채소류에선 양파, 마늘, 아스파라거스 등이 포드맵 식품에 속한다.

포드맵 식품은 소화에 문제가 없을 경우엔 헛배부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걸린 경우엔 복통과 설사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연구진이 제안하는 두 번째 식이요법은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고지방) 식단이다. 섬유질 함량은 높지만 다른 모든 종류의 탄수화물, 즉 설탕과 전분 함량은 낮은 식품과 단백질 및 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증상 완화에 좋은 식품은?

이번 연구는 연구진이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들이 저탄수화물 식단으로도 효과를 본다는 사실에 착안해 시작됐다.

연구진은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 약 300명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해 약물 요법과 두 가지 식이요법(저포드맵, 저탄수화물) 중 한 가지를 무작위로 배정했다.

우선 약물 그룹엔 8가지 약물 중 하나를 증상에 맞춰 제공했다.

두 번째 저포드맵 그룹엔 쌀, 감자, 퀴노아, 밀가루 쓰지 않은 빵, 유당 없는 유제품, 계란, 닭고기, 소고기, 과일, 채소 등이 포함된 저포드맵 식품과 레시피를 제공했다.

세 번째 저탄고지 그룹엔 탄수화물은 적고 단백질과 지방 함유량은 많은 식품과 레시피를 제공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계란, 치즈, 요구르트, 채소, 견과류 등이다.

연구진은 또 식이요법 참가자들에게 규칙적으로 소량씩 천천히 식사를 하고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음식과 음료는 섭취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전 식습관으로 돌아가도 효과 지속

4주 후 세 가지 요법의 효과를 비교한 결과, 식이요법의 증상 개선 효과가 약물 요법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효과가 큰 것은 저포드맵 식이요법이었다. 증상이 크게 완화된 사람의 비율이 저포드맵 그룹이 76%로 가장 높았고, 이어 저탄고지 그룹이 71%, 약물 요법 그룹이 58%였다. 연구진은 저탄고지 식단의 효과가 저포드맵 식이요법과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는 점은 놀라운 발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6개월간의 추적 조사에서도 식이요법 그룹은 효과가 지속됐다. 일부 식품을 이전처럼 섭취했는데도 저포드맵 그룹의 68%, 저탄수화물 그룹의 60%는 여전히 유의미한 증상 완화를 보였다.

저포드맵 식품으로 차린 식단. 삼성서울병원 제공

저탄고지식단,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에 주의

그러나 저포드맵 식이요법을 실행하려면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식품 대부분이 포드맵 식품이기 때문이다.

영국 사우샘프턴대의 헤이즐 에버릿 교수는 “두 가지 식이요법의 문제점은 장기적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라며 실험이 더 오랜 기간 지속됐다면 더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데이빗게펜의대 린 장 교수는 어떤 경우엔 식단과 약물을 조합하는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데, 이번 연구에는 이 조합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연구진은 두 가지 식이요법 가운데 저탄고지 식단의 문제 중 하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간 상승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는 심장질환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연구를 이끈 산나 니바츠카 박사는 “따라서 이 식단을 채택하려면 그전에 의사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저포드맵 식단 3단계 실천 요령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영양사들의 조언을 토대로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 완화를 위한 저포드맵 식단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3단계로 구성된 이 식단 프로그램의 제1단계(제거 단계)는 2~6주 동안 모든 고포드맵 식품을 저포드맵 식품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권장 식품은 쌀, 퀴노아, 계란, 단단한 치즈, 대부분의 육류와 생선, 감귤류와 딸기, 당근, 브로콜리 등의 과일 및 채소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데이빗게펜의대 린 장 박사는 “만약 1단계에서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식이요법은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드맵 식품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증상이 좀 나아지면 제2단계(재도입단계)로 포드맵 식품을 한 번에 하나씩 며칠에 걸쳐 양을 늘린다. 어떤 포드맵 식품이 증상을 유발하는지 파악하는 게 이 단계의 목표다.

마지막 3단계는 개인화 단계로, 감당할 수 있는 양만큼 포드맵식품을 다시 추가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균형 식단을 만드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영양결핍 상태이거나 임신 중, 식이장애 병력이 있거나 18살 미만, 노인의 경우엔 저포드맵 식단보다는 ‘덜 높은’ 포드맵 식단이 적합할 수 있다는 영양사의 조언을 소개했다. 이 경우엔 제1단계에서 밀, 양파, 마늘, 콩, 우유 및 일부 과일 등 가장 문제가 많이 되는 몇몇 식품만 뺀 뒤 2단계로 넘어갈 것을 권했다.

미국의 유명 영양 전문가인 타마라 듀커 프리만은 “다이어트의 일반적인 함정은 사람들이 가장 엄격한 형태의 식단에 너무 집착해서 제1단계에 갇혀 버리는 점”이라며 “저포드맵 식단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관리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들은 섬유질 섭취량을 조절하거나 식사를 적게 하고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완화되는 등 개인차가 있다는 것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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